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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Oct 29. 2024

버려야 하는데

황금 같은 가을 주말, 강산이는 뭐 하고 놀았어?

누나는 여름옷 정리하고 밤새도록 소설 『영원한 천국』 들었지.

정유정 작가님 작품은 심장 졸깃한 스릴과 재미가 있잖아.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집에 죽 통 두고 간 거...... 돌려주려고."

"아아..."

그녀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상대의 표정을 잘 읽는다고 자부하는 내 눈이 해석한바, 웃음의 의미는 이랬다. 나는 네게 죽통을 날리고 싶다.     

밤에 들으니 몰입도 좋고.

누나 부엉이짓은 이 나이를 먹어도 고쳐지지가 않는다.

학창 시절에도 낮에 자고 밤에 공부했었잖아.

모두 잠들고 소음이 잦아들면 우선 내 귀가 편해져.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밀려들던 온갖 소리들이 나를 놓아주는 느낌이랄까.

 아까 점심에 유주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집에 갔어요.

한 가족이 떠들썩하게 식사 중이더라고.

식구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듣지 않으려고 해도 안 들을 제간이 없는 거야.

자기들 오가는 길에 휴게실을 몇 번 들렀다느니, 화장실 상태가 어떻다느니, 어디 화장실은 

변기가 어떻다느니….

슬슬 화가 치밀면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떠드는 위인을 한 번 대차게 째려봐 주고 싶어 지더라고.

맥없이 옆에 앉은 유주에게 말했어.

“듣기 싫은 소리 안 듣기도 어려워.

볼륨이 너무 크잖아.”

공공장소에서 목청 높은 사람이라면 그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맹인 군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단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MZ세대들은 선 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 분명하고 표현도 똑 부러지던데, 난 왜 이 모양인지 답답해.

강산아, 누나가 시각장애인 소식지를 보니까 글쎄 젊은 여자 시각장애인들 혼자서 국내외 여행을 다니더라.

얼마나 대단하니!

바다도 가고, 동남아며 유럽이며 해외여행도 나가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를 표현하고 누릴 줄 아는 멋짐 그녀들이구나.

 생각해 보면 난 버릴 것이 참 많은 사람인 것 같아.

묵은 옷들 못 버리지, 감정 표현 서툴지, 속에 쌓인 화 조곤조곤 못 풀지.

 잘 버리는 사람이 정리도 잘한다는데….

버리는 것.

결단력이 필요하잖아.

누나가 시각장애 이상으로 결정장애가 심하잖니?

그리하여 고심 끝에 버리려고 물건을 내놓았다가도 활동 선생님이나 친정어머니가 괜찮다 하시면 주섬주섬 다시 원위치.

그렇게 번번이 ‘아끼다 똥’을 만드는 거야.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

연습해 볼게.

쓸데없는 이 무게 좀 가벼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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