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도 Nov 11. 2024

호모 루덴스

강산아, 오늘은 누나 학교 대표 행사인 솜씨자랑 발표회가 있었어.

솔직히 이료재활전공과 성인 학생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딱히 없는….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학령기 학생들의 1년간 방과 후 활동을 뽐내는 자리.

우리 성인 학생들은 뒷켠에 안마 의자를 깔고 학부모님들 어깨 주물러 주는 정도로 참여를 해.

학생들 무대 의상 계속 갈아입히고, 율동하는 학생들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더 큰 동작으로 율동하고, 마이크 들고뛰어다니고, 직접 사회를 보고, 강당 청소하고, 행사 의자 세팅하고 뒷정리까지 눈 뜬 동료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누나 집에서도 그렇잖아.

‘손’ 아닌 ‘돈’을 보태는 자.

학교에서는 ‘손’ 아닌 ‘안마’를 보태는 자.

음 오늘 행사에서는 학부모님 한 분 어깨를 풀어드렸네.

교통사고가 났었다고 하시더라고.

예의상 하는 인사겠지만.

“선생님, 진짜 어깨가 훨씬 편해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혹시 평일에 시간 되시면 저희 임상실 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교통사고 후유증은 고약해서 당장은 괜찮은 것 같아도 치료 안 하시면 오래 고생하세요.

임상실에는 베드도 있으니 편히 누워서 전신받으시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실 거예요.”

“아, 학교에서 무료로 안마를 해주신다고요?”

“네. 우리 학생들 자격증 받기 전에 실습 과정으로 해드리고 있어요.”

 안마 잘 안 팔리더라.

학부모님들 옷도 빼입고 오셨을 테고 뒤에 앉기가 아무래도 어색하셨는지….

박수만 열심히 쳤네.

우리 학생들 전문 성우님 지도로 연극도 하고, 피아노며 노래며 밴드며 솜씨 자랑을 겁나게 했어라.

강산아, 맹학교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게 뭔 줄 알아?

바로 춤.

유주 초등학교 때도 생각했었는데, 비장애인 친구들은 진짜 춤을 많이 추더라고.

우리 학생들은 대부분 악기나 목소리로 유희를 즐기는 거지.

아, 오늘 율동은 휠체어에 앉은 친구들과 나란히 의자에 앉은 자세로 단 한 팀이 선 보였다더라.

 교장선생님 말씀하셨어.

우리 학생들이 놀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고.

검색해 보니까 ‘호모 루덴스’라는구나.

얼마나 근사한 교육철학이니!

공부만 잘하는 AI 같은 인간 말고, 장애가 있어도 사회에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그리하여 놀 줄 알고, 즐길 줄도 아는 사람을 양성하는 배움터.

쇤네 또한 ‘호모 루덴스’로 거듭나오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꾸 화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