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황금연휴를 누렸다. 모처럼 시댁에서 하루 묵으며 가족들과 식사하고 윷놀이도 했다. 딸아이가 초등 저학년일 때부터 차씨네 전통으로 벌어지는 승부인데, 큰아빠와 유주 1:1 대결이다.
“그냥 한 판으로 가요. 쫄?”
“쫄리긴 인마, 연구 많이 했나 본데. 큰아빠 인정사정 안 봐주는 거 잘 알고 있지? 준비 됐나?”
온 식구가 둘러앉아 두 선수의 박빙을 관전한다. 때로 폭소가 터지고 한숨과 비명이 난무하며 거실 공기가 후끈해진다. 큰엄마는 언제나 큰아빠의 적군, 결사적, 유주 편이다.
연휴가 길어 시댁에서 여유를 즐기고도 휴일은 충분했다. 기회를 놓칠세라 동생은 친정 가족들을 위한 숙박과 스파를 예약했고, 모처럼 물놀이와 산책 시간을 푸짐하게 가졌다.
2028년에나 다시 돌아온다는 황금연휴를 만끽하고 보니 10월은 중순이 되어 있다.
13일인데, 이 달의 첫 출근이다. 월요일 시간표와 일정을 살피는데, 딸아이 학원비 결제일이 아닌가. 열흘이나 날아가 버린 평일 수업 시간에 비용을 지불하려니 손이 떨려왔다.
깊은 숲 속에 위치한 리조트에서 이틀을 머문 우리는 커다란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서 기차에 올랐다. 환승하는 역에서 점심으로 요기할 햄버거까지 장전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딸아이가 끄는 케리어 바퀴 소리가 구간구간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다름 아닌 내가 발바닥으로 감지하고 방향을 잡는 편의 시설인데, 그래서 거주하는 지자체 무장애 산책로에도 설치해 주십사 무수히 청원했던 점자 블록인데, 내 아이가 끄는 케리어의 매끄러운 주행을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되다니.
‘자주 여행을 하는 누군가가 주변에 시각장애인을 접할 기회가 없다면, 그래서 점자블록의 중요성이나 용도를 미처 알기 어렵다면, 이 덜컹거리는 블록의 쓸모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구나.’
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 거리에서는 쉼 없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며 생각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왜 저렇게 경적을 눌러대나? 어지간히 성격이 급한 민족이로군.’
우리 학교 교정에는 대다수 학생들이 흰 지팡이를 사용하여 이동한다. 너도 나도 앞을 못 보다 보니 흰 지팡이를 두들기며 장애물을 확인하고 계단 구조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인데, 교내가 붐비지 않을 때는 나의 지팡이 소리도 얌전하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지팡이 든 학생들 부대가 몰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면서 지팡이 소리를 크게 내게 되는 거다.
“여기 내가 있습니다.”
퍼뜩 그 나라, 그 경적 소리의 의미를 깨달았다.
‘다 비켜.’가 아니라 ‘오지 마.’였던 거였으니, 내 멋대로 그들을 참을성 없는 사람들로 간주해 버린 꼴이 아닌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오른다 싶으면 언제 팔아야 한 푼이라도 더 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까 안달을 하고, 팔고 나서도 유유히 오르는 주가를 보고 있자면 마땅히 내 주머니에 있어야 할 돈을 누군가 훔쳐간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한결같이 한 박자 느린 나인지라 겪어보지 않고는 결코 가질 수 없을 품격에 오늘도 헛손질만 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