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름휴가는 다녀오셨나요?
특수교사인 저는 방학 동안 인근 지역 일반중학교에 재학 중인 저시력 학생의 점자 교육을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목소리로 전달되는 학생 고유의 명랑한 기운에 퍽 즐거웠어요. 점자를 처음 접하는 친구임에도 한글점자 제자 원리를 명석하게 이해했습니다. 단 10시간에 걸친 수업이었지만, 한글점자는 물론 숫자와 영문 알파벳까지 가뿐하게 소화하더라고요. 점형을 완전히 암기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묵자와 점자의 차이라든지 왜 약자를 만들어 쓰는지에 대한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반짝반짝 반응하는 태도가 예뻐서 지도하는 저도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료교육과정 시안개발 공청회 토론 자료 준비 작업과 본교 행정 업무처리 등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저에게는 개학 전에 꼭 지켜야 할 약속이 하나 있었어요. 2021년 1월, 예기치 못한 병환으로 우리 곁을 떠나가신 고 김학 스승님께 직접 다녀오는 일이었습니다. 6년간 교수님 밑에서 공부했어요. 스승님 덕분에 문예상 수상도, 등단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 수필집 평설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1월에 교수님이 떠나시고 3월에 제 책이 출간됐습니다. 완성된 종이책을 펼치면서도 교수님 부재가 인정되지 않았어요. 슬펐다가 암담했다가 답답했다가 갈피를 못 잡고, 한 1년은 개인 독서 메모만 짧게 근근이 썼지요.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모악 추모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교수님의 저서인 〈손가락이 바쁜 시대〉가 납골함 안에 있더군요. 납골함 자리가 높아서 그나마도 까치발로 겨우 위치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산소가 아니다 보니 좋아하시던 소주 한 잔도 올릴 수가 없더라고요. 눈물로 그리운 마음만 게워냈습니다.
“김밀도 선생 방학했지? 얼마나 썼어?”
‘항상 이렇게 물으셨는데…’
“교수님 저 방학하고 두 편이나 썼어요.” 하면,
“허이고, 많이도 썼다. 부지런히 써. 자네는 남다른 감각으로 소리를 듣잖아. 김 선생만 쓸 수 있는 글을 써봐.”
‘교수님, 하늘에서 보고 계시지요? 저 겨울에 아파서 수술했어요. 올해부터는 점자 도서관 월간지에 연재도 해요. 이제 꼼짝없이 한 달에 한 편씩은 쓰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안전장치를 설치한 셈인데, 칭찬해 주실 거죠?’
사실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교수님 앞에 서서 얘기하니 참 좋더라고요. 〈손가락이 바쁜 시대〉에 걸맞도록 키보드 두드릴 힘을 더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한편 이료교과서 관련 토론이 숙제로 남아 있었어요. 마흔이 넘도록 남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소심인인지라 몇 날 며칠 골머리를 앓았지요.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딱 잘라 거절도 못 하고, 부담감에 허덕거렸습니다. 보다 못한 똑순이 친구가 10시간 집중해서 뚝딱 만들어낸 자료를 참고하라며 보내주었지요. 일도 육아도 쿨하게 해치우는 파워우먼입니다. 똑순이의 자료가 너무 완벽하니, 참고는커녕 차라리 손을 놓고 싶어 지더라고요. 꾸역꾸역 쓰고 말했습니다. 토론이 끝나고 카톡이 왔어요.
“친구야, 잘했어.”
하나도 잘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튿날 또 다른 발표에 성경학교 교사 일까지 넉넉하게 감당하고 있는 1등 일꾼에게 일 좀 그만하라고 핀잔하면서도 마음은 훈훈했지요.
독자님들은 사실언어와 감정언어 중 어떤 쪽을 주로 사용하시나요? 납골당에서 스승님과 나눈 대화도, 똑순이와의 문자도 사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라는 사람은 감정언어를 주로 쓰는 동물이라는 것을,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우뇌형 인간이 많다는 것을 살면서 종종 체감하게 돼요. 사실언어는 건조하지만 불필요한 해석이 따라붙지 않아서 좋아요. 반면 인정사정없는 팩트 폭격이 되기도 하지요. 감정언어는 저같이 대책 없는 유리멘털에게 유용한 언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신 승리든 합리화든 우리는 보통 긍정의 온기 위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잖아요? 부정적 감정언어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칫 사나운 화마가 되어 상대방과 내 가슴에 시커먼 잿더미를 남기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추석 명절을 마중하는 이 시점에서 K며느리들이 싫어하는 ‘시금치’는 감정언어일까요, 사실언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