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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r 05. 2024

점자야 고마워

    벼가 누렇게 익어갑니다. 알밤이며 도토리가 실하게 영글어 떨어져요.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잎들이 카펫이 되었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낙엽 쓰는 빗자루 소리가 가을이 깊었음을 일깨워 주네요.

  11월 4일.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기념일일까요? 올해로 96돌을 맞이하는 점자의 날. 개인적으로 저는 점자를 무척 좋아해요. 아니 사랑합니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흔하디 흔한 각막염이 급성 녹내장으로 발전하는 동안 1년이 멀다 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잔존 시력을 겨우 유지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나날이었어요. 일반 초등학교 졸업은 어찌어찌했는데, 교과서 글자가 작아지는 중학교 진학은 엄두를 못 냈지요.

  우연한 기회에 당시 서울 잠실에 있던 연합세계선교회에서 점자를 배울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방학을 이용해 맹학교 입학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여섯 점으로 이루어진 점자라는 생소한 문자가 제 인생에 얼마나 큰 의미가 될지 그때는 몰랐어요. 요즘은 점자 학습용 낱말 카드도 다양하게 나와 있고 텝틸로니 한소네니 하는 보조공학기기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시대였어요. 점판에 점자 지를 고정시키고 점간을 끼워서 점필로 한 칸 한 칸 손수 찍으며 읽는 훈련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딱히 왕도가 없었습니다. 쓰기 선생님과 읽기 선생님이 따로 계셨어요. 읽기를 가르쳐 주셨던 여자 선생님이 무서웠다는 기억이 남아 있네요. 맹학교를 들어가려면 한글점자를 다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쓰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를 향상하는 것이 확연히 더뎠어요. 한글점자를 익힌 후 맹학교 중등부에 입학했습니다. 영어 알파벳을 점자로 배웠어요. 덕분에 아직도 묵자 소문자 모양이 헷갈린다는….

  요즘은 맹학생들도 종이 점자책을 많이 보지 않아요. 부피가 크고 분권이 되어 있다 보니 수업 시간에 진도에 맞춰 책을 펴놓는 것조차 매끄럽지 않습니다. 한소네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과학기술의 첨단을 누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점자 종이책을 고수합니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서일까요? 두 손바닥 가득 점자를 만지며 읽어 내릴 때 비로소 속도가 붙거든요. 수업 진행은 물론 개인 독서 또한 점자 종이책으로 할 때 훨씬 밀도가 높습니다. 부피는 크지만, 무게는 가벼우니 가방 속에 넣고 다니기도 좋지요. 어디서든 조용히 펼쳐볼 수 있어요. 반복해서 정독하기 좋고 맞춤법을 확인하기도 편해요. 반면 책마루나 모바일 도서관 앱들은 둘도 없는 파워 독서 메이트지요. 만약 제가 일찍이 점자를 손끝에 익히지 않았다면 오늘날 특수교사요, 수필가의 삶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새삼 한글점자를 창안하신 송암 박두성 선생님께 망극한 감사 인사를 올리게 될 수밖에요. 딸아이가 묻습니다.

  “엄마 점자는 어떻게 읽어? 점자에도 기역, 니은 이런 거 다 있어?”

  “그럼 다 있지. 근데 점자는 일반 글자랑 다르게 초성, 중성, 종성을 다 나란히 써.”

  “아, 그래서 책이 뚱뚱하구나. 나도 점자 배울래.”

  “엄마한테 편지 써주려고?”

  “아니.”

  여전히 딸아이를 재울 때는 점자책을 읽어 줍니다. 신간은 한소네로 읽을 때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더뎌요. 32셀로 펼쳐지는 문장들이 간질간질 감질납니다. 요즘에는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로 갈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어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은유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예요. 한 은유는 과거에서, 또 다른 은유는 미래에서 각기 다른 고민과 생각을 나누어요. 표현이 얼마나 솔직 담백한지 읽다 보면 이대로 괜찮나 하는 노파심이 드는 걸 보면 저도 영락없는 꼰대인 걸까요? 가령 “엿같다”라든지 “가출해 버릴 거야”라든지….

  생각해 보면 눈감고 사는 저에게 사운드나 텍스트는 언어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손끝에 만져지는 점자로 열리는 세계는 무궁무진하지요. 학습은 물론 다채로운 문학 작품에도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습니다. 늙어지도록 글쟁이로 살고 싶은 소심한 맹인에게 점자는 그야말로 구원이에요. 종이든 공학기기든 한글이든 외국어든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교신하는 중요한 시그널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요, 주체성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네 인생 속에 녹아 있는 환희에 환멸까지도 개성 있게 표현하는 MZ세대들에게 종이 점자가 유물처럼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점자 문해력만큼은 다채로운 채널로 쑥쑥 자랐으면 해요. 장애나 비장애를 떠나서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잖아요? SNS 위주의 짧고 간결한 소통 방식, 단발성으로 소비되는 영상 콘텐츠,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거짓 정보 등 온라인 생태계에서 온전한 자아를 지켜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요. 질풍노도의 시기, 왕성한 호기심과 혈기가 넘치는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노출되고 마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들이 교사로서 또한 엄마로서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점자교육, 나아가 독서교육이 그래서 “I am still hungry.”인가 봐요.

  2017년 5월 점자법이 제정되었어요. 공용 서식이나 간판에 사용되는 점자 규격 통일안은 물론 점자출판물 인쇄, 점자지도 등 일상생활 속에 점자가 스며듭니다. 가까이는 편의점에서 컵라면, 음료 캔 등 몇 가지 제품 용기에 점자가 표기된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우리 시각장애인의 윤택한 삶을 위해 사회 요소요소에 점자가 더 널리 보급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상징인 점자가 문화로 녹아 장애와 비장애를 넘나드는 통합 코드로 정착되는 날이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마침내 도래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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