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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r 05. 2024

안마에 진심인 네가 챔피언

     

  송홧가루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산들바람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실려 오고, 밤이면 개구리 가족이 합창합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에요. 민주항쟁이 떠오르고 6·25 전쟁이 발발했던 아픈 역사가 2023년의 오늘을 견인합니다.

  지독했던 코로나가 한풀 꺾이고, 사실상 격리 조치마저 무의미해짐에 따라 우리 학교에서도 속속 교내외 체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감염병이 창궐하면서 올스톱되었던 교외 안마 봉사 대상 기관을 섭외하고, 이료 재활 전공과 졸업반 학생들의 임상 실습 활동을 실전으로 진행합니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안마 봉사하는 교내 임상실 운영을 무려 3년이나 못 했잖아요. 시간은 가는데, 그야말로 속수무책 답답한 세월이었습니다. 시술자들은 시술자대로 다양한 피술자를 접하지 못해 안타깝고, 우리 임상실 단골 안마 마니아 지역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굳게 닫힌 교문 개방을 손꼽았어요.

  2023년 4월 첫째 주 화요일, 드디어 학생들의 임상 실습을 개시했습니다. 금세 예약이 완료되었어요. 학교 근처 농가에 사시는 할머니부터 남녀노소 고객들이 달려옵니다. 매일 같이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연습했던 표준안마술식이지만 학생들도 실제 상황에서 환자들을 대하니 전에 없이 긴장하는 모습이더라고요. 그런 학생들이 제 눈에는 참 예뻐 보입니다.

  타이머를 맞추고 피술자와 인사를 나눕니다. 시술자도 피술자도 깨끗하게 손 소독하고 복용하는 약물이 있는지, 수술 부위는 없는지 확인합니다. 측와위로 누운 피술자가 편안히 기댈 수 있도록 큼직한 쿠션을 놓아 드리며 시술을 시작해요.

  “아이고, 시원해!”

  다섯 개 베드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집니다. 때로는 강도가 약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피술자 만족도는 높아요.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라서 평가가 후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날마다 성심껏 안마하며 땀 흘리는 우리 학생들이 다름 아닌 ‘챔피언’ 아니겠어요?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교외 강사를 섭외하여 특강을 진행합니다. 지방에서 시각장애인에게 특화된 전문 강사를 모신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아요. 타 지역 맹학교 교사들과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학생들 필요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지난여름에는 얼굴 축소와 복부 내장 마사지를 공부했어요. 서울에서 오신 K 강사님의 남다른 열정으로 하루를 꽉 채워 실습했지요. 현장에서 생업으로 마사지하는 전문가 손맛. 진짜 달라도 너무 달라요. 부드러운데 강합니다. 주요 근육의 해부학적 부착부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여 경혈이며 트리거 포인트를 자유자재로 터치하는데, 그 능숙함이 가히 특급 요리사 뺨치시더라고요. 훔칠 수 있다면 체면 불고, 슬쩍하고 싶은 흑심이 불타올랐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학생들도 성격 따라 안마 스타일이 달라요. 말수가 적고 꼼꼼한 학생은 근육도 정밀하게 만집니다. 반면 외향적이고 감정 색깔이 분명한 학생들은 급한 속내가 그대로 손끝에 드러나지요. 어느 쪽이든 꾸준히 연습하며 갈고닦은 손이라면 OK, 무조건입니다.

  무시로 실감하게 돼요. ‘안마’ 얼마나 좋은 기술인지….

  평범한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예기치 않게 실명의 좌절을 겪고서도 무지구가 퉁퉁 붓도록 연습하는 우리 학생님들, 왕복 4시간에 육박하는 ‘어마무시한’ 통학 노동을 불사하며 ‘소상·어제·태연·경거·척택’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우직한 그대들은 진정한 “챔피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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