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으로 봄꽃이 만발입니다. 벚꽃도 목련도 지고,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이에요. 기념일이 푸짐한 5월, 6학년 딸아이에게 마지막 어린이날 선물을 건넸습니다. 아직은 엄마 아빠에게 특별한 비밀 없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는 녀석이에요. 샤워하면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젖은 머리로 거울 앞에 서서 열정적으로 춤추는 남다른 하이텐션의 소유자인데, 머지않아 여느 사춘기 언니들처럼 방문을 걸어 잠그고 독립투사 모양으로 저항의 깃발을 흔들어대는 날이 오겠지요?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이라면 자연히 통과하는 과정임을 이해하면서도 유리 멘털 엄마는 지레 긴장하게 됩니다.
독자님들은 무슨 요일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는 “월요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월요일 아침을 좋아합니다. 불금의 퇴근은 더없는 축복이지요. 전업맘들의 달력은 월화수목금금금이라지만, 한 주 열심히 근무하고 맞는 금요일 저녁은 초콜릿처럼 달콤합니다. 토요일 늦잠은 그야말로 감동이지요. 여기에 화요일 독서토론은 비타민 그 자체입니다.
3년 전에 점자도서관에서 주최한 온라인 독서토론에 처음 참여했어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초등 하루 한 권 책 밥 독서법」, 「일천 권 독서법」, 「기적을 만드는 엄마의 책 공부」 등을 저술하신 전안나 작가님이 발제를 도맡아 토론을 진행해 주시는데,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습니다. 첫 도서가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어요. 프랑스 작가 장 자크 상페 작품이었는데 콤플렉스를 가진 두 아이가 진정한 우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지요. 「긴긴밤」, 「마지막 잎새」처럼 동화 같은 작품도 읽습니다. 「회색인간」, 「도련님」, 「슬픔이여 안녕」, 「변신」, 「이반 일리치의 죽음」, 「노인과 바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등과 같이 묵직한 사유가 뭉게뭉게 뻗어나가는 소설도 읽었습니다. 여럿이 한 작품을 음미하니 과연 그 맛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요. 도서에 평점을 주고, 인상적이었던 문장과 그 이유를 정리합니다. 독자에 따라 각자 관점에서 작품을 다르게 해석하는 거예요. 가령 제가 인물의 내적 정서에 주안점을 두고 개인 감정선에 치중해서 감상평을 나누었다면 누군가는 같은 상황을 사회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평가하는 거예요. 별수 없이 감성과 이성이 충돌합니다. 정답이 없으므로 모두가 부담 없이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말해요.
「페인트」라는 작품을 읽을 때 찬반을 묻는 논제 중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책 속 nc 센터 아이처럼 열세 살이 되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지금 내 부모를 선택할 것 같나요? 선택하지 않을 것 같나요?
- 지금 내 부모를 선택한다.
- 지금 내 부모를 선택하지 않는다.”
독창적인 소재입니다. 부모가 입양할 아이를 선택하는 사회 시스템을 뒤엎는 내용으로 소설이 전개되거든요. 부모 면접을 본다는 쪽과 보지 않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평소 성격대로였다면 감히 부모 면접이라니 당치도 않다며 펄쩍 뛰고도 남을 문답지였으나 그날은 왠지 예능 모드이고 싶더라고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금수저 부모로 면접해보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말하는 저도 듣는 이들도 그냥 웃었지요.
매주 화요일 저녁 두 시간이 꿀 같습니다. 복지 프로그램이 다양한 서울 장애인들은 운동이다, 레저다, 문화 공연이다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제법 많잖아요? 대도시 장애인 삶의 질을 부러워만 하다가 ‘온라인’이라는 은혜로운 혁신에 특급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전안나 작가님이 진행과 발제를 도맡아 이끌어 주시던 형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 토론자들이 직접 발제해 보는 동아리 형태로 첫발을 뗍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건만 지정 도서에 밑줄 그으며 능동 독서하게 되더라고요. 시각장애인 독서 문화 향상을 위해 일하시는 점자도서관 관계자님들 덕분에 이 시골 맹인도 값지고 즐거운 문화생활을 영위합니다. 새삼 감사 인사 올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