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전쟁 통에 교회도 못 갔다. 열두 살 딸아이가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슬라임만 만지작거렸다. 도처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등교 수업을 하고 있으니 태권도와 영어 학원에도 등원시켰다. 확진자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기분으로 매일을 살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저희들끼리 노는 것은 못내 불안했다. 나가고 싶어라 하는 아이를 주저앉혔다. 외동인 아이가 안쓰러워 갖고 싶다는 장난감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에 쥐어줘야 직성이 풀렸다. 결핍 없는 아이는 물건 귀한 줄 몰랐다. 툭하면 잃어버리고 흘리고 떨어뜨렸다.
분실물을 아쉬워하는 법도 없었다.
긴 하루를 집에서 복닥거린 모녀가 아빠 퇴근 시간이 되어 너절한 거실을 정리했다.
라면 먹방에 넋을 놓고 있는 유주를 채근했다. 텔레비전만 보면 영혼이 빠져버리는 아이를 익히 알고 있었다. 평일 피로를 주말 자유로 힐링 했으면 했다. 드라마 한 번 시작하면 멋대로 정주행 하는 내 선택이 중요한 것처럼 유주의 쉼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했다.
치운다고 치워도 번번이 남편 잔소리를 샀다. 마음은 급한데 아이는 꼼지락거렸다.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하면서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텔레비전 꺼.”
엄하게 명령하고 나서야 유주가 움직였고, 몇 분 후에 남편이 귀가했다.
“하루 종일 슬라임 했냐? 근데 왜 텔레비전 볼륨을 죽여 놨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잠자리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 엄마 몰래 휴대폰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고, 값비싼 비타민제 알약을 휴지에 싸서 버린 것을 들켜 혼쭐이 나기도 했다.
“엄마는 거짓말하는 사람 제일 싫어해. 특히 상대방 약점을 이용해서 속이는 건 더더욱 큰 잘못이야. ”
안내견 강산이와 단 둘이 살 때 동네 꼬마들이 집에 자주 놀러 왔다. 귀공자 강산이 보러도 오고, 엄마가 만든 특별식 배달도 왔다. 착한 이웃과의 교제는 당시 내게 큰 힘이 됐다.
초등 4학년 현진이는 단연 상냥하고 밝았다. 붙임성이 좋았고, 야무지게 나를 도와줬다.
은행이 멀리 있어 평소 생활비를 서랍에 넣어 놓고 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 돈이 조금씩 비었다. 처음에는 1,000원짜리 지폐가 한 장씩 없어지더니 점차 액수가 커졌다.
셈이 둔한 데다가 가계부도 쓰지 않는 내가 무언가 잘못 됐구나 확신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즈음 현진이가 내게 열쇠고리며 머리핀 같은 조악한 장난감을 선물했고, 의심은 확증이 되어 갔다. 조심스러웠고, 아니었으면 바랐다. 고심 끝에 아이를 조용히 불렀다.
“솔직히 얘기하면 이모 현진이 용서할 거야.”
30분이 넘도록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잘못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이모가 돈 거기에서 꺼내는 거 보고 천 원짜리만 가져갔는데….”
‘어린 너마저도 나를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않았구나.’
시간이 지체됐고, 전화를 받지 않는 내가 궁금해 아이 엄마가 집으로 찾아왔다.
어른들 문제로까지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으나 이미 우리 둘 다 눈물범벅이었다.
당황한 아이 엄마가 울면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같이 무릎 꿇고 서로 사과했다.
1학년 안마 실습 시간, 2학년 어른아이 학생 둘이 잠입해 있는 것을 끝 종 칠 때까지 모르고 수업한 날이 있었다. 삼촌뻘 되는 학생이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당황한 내가 그를 뜯어말리며 불편한 상황을 정리했다.
맹인 선생님 시험 감독일 때 학생들은 커닝을 시도했고, 여지없이 들켰다. 맹인 선생님 수업 시간에 소리 죽여 게임했고, 자세가 흐트러졌다. 파도 같은 모멸감에 눈물을 훔쳤다.
불혹이 넘어서야 겨우 깨닫는다. 안 보이는 사람 눈속임, 쉬워도 너무 쉬운 일 아닌가?
은연중에 빚어지는 일도 있을 게다. 설령 시커먼 의도를 품었다 하더라도 정작 일의 경중을 따져보면 그다지 힘 뺄 일 아닐 때가 더 많다. 기분 상하는 포인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행동이 내 존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거라고 단정 짓는 태도 역시 정답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수업 시간에는 유독 목청이 크다. 학생들 귀가 따가워서 졸지 못하도록 수시로 지명하고 질문한다. 교과서 속 짧은 문장을 불시에 읽게 하고, 목소리가 안 들리는 학생은 내가 깜빡하고 결석 처리 할 수 있다고 웃으며 공지한다.
휴대폰이며 텔레비전 보고 싶어 몸살 하는 유주에게 복잡한 마음으로 일렀다.
“상대가 누가 됐든 눈속임하는 건 나빠. 엄마 속이는 거 사실 어렵지 않아. 몰래 하고 싶을 때 있어. 엄마도 어릴 때 그랬으니까 유주 마음 알아.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 한 번 거짓말하기 시작하면 그걸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돼. 무엇보다 엄마가 유주를 의심하고, 유주가 엄마를 믿지 못하게 되면 서로가 얼마나 불편하겠어? 엄마는 세상에서 유주가 제일 소중해. 그래서 가르쳐 주고 싶어. 살다 보면 누구나 유혹이 있어. 실수할 수 있지만 반복하지는 말자.”
사소했어도 고의라는 점에서 쉬 넘어가지지 않았다. 일일이 상처받고 필요 이상 속을 끓였다. 쉬운 일은 빈번하다. 그것뿐이다. 번번이 과잉 해석하느라 의식 회로가 꼬여 정돈이 힘들었나 보다. 묵은 때 제거에는 청소가 상책이다.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환기시키자. 감사 공기를 호흡하자. 수술이 필요한 부위는 과감하게 도려내자.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을, 나 혼자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