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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y 03. 2024

중학생이 나가신다.

“스타킹 신자. 오늘 비도 오고 날씨 춥대.”

“내가 알아서 할게.”

 결국 짧은 양말을 신고 등교했습니다. 저녁마다 어성초다 알로에다 팩을 붙여요. 

친구들과 쇼핑하며 파데는 어디 것이 좋고, 틴트는 무슨 색깔이 예쁘고, 서로의 피부톤이 웜인지 쿨인지를 논합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분명 어린이였던 녀석인데, 교복 치마를 접는 폼이 영 낯서네요.

 제가 졸업한 맹학교는 교복이 없었습니다. 미적 감각도 안목도 타고나지 못해 그 시절에는 청바지를 주로 입었더랬지요. 찢어진 청바지가 유행했어요. 기장을 길게 늘어뜨리고 바지단이 다 해지도록 길바닥을 쓸며 끌고 다닌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뒤돌아 보면 저도 그맘때부터 가족보다는 친구와의 시간에 열과 성을 다했던 것 같아요.

주말에 가족 나들이가 있을라치면 따라가기는커녕 빈집에 친구들을 모았습니다. 

밤늦도록 얘기하고 웃고 울고 다시 웃다가 새벽을 맞은 날들이 있었어요.

그 시절 우리들의 배는 물론 영혼까지 살찌워준 만능 솔푸드는 단연 떡볶이와 라면이었지요.

기숙사에서는 온갖 라면을 종류별로 먹었습니다.

취침 점오가 끝나고, 밤 10시가 넘어 전기쿠커를 달그락거리며 끓여 먹는 라면맛, 모르실 거예요. 숟가락만 사용하느라 라면을 다 부숴서 끓였거든요. 그래야 안 보이는 우리가 각자 그릇에 덜어 먹기도 편하고 방바닥에 흘릴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저의 사춘기는 청바지와 라면과 떡볶이와 고백과 친구와 성적 따위로 하루하루 채워졌습니다.

 열네 살 유주는 여중을 지망했어요. 단정한 블라우스에 타이, 조끼와 치마를 갖춰 입은 중학교 1학년, 상상만 해도 어여쁩니다. 바로 제 곁에 있어도 그 자태를 한눈에 담을 수가 없네요.

 스타킹 때문에 신경전을 한 판 벌이고 출근을 했습니다.

 자리에 앉았는데, 앞뒤 없이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하다못해 단골 편의점 아줌마도 거저 보는 내 아이의 교복 입은 모습을 난 볼 수가 없구나.’ 

눈감고 산 세월이 어언 30년인데, 아직도 이런 통증을 느낀다는 사실이 생경하더라고요.

네 살 유주가 처음 재롱잔치 무대에 올랐던 날도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열심히 박수를 치면서 아닌 척 눈물을 찍어냈어요.

완벽하게 포기했다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더라고요.

‘살면서 이런 순간들이 몇 번은 더 스쳐가겠구나. 첫 출근하는 너를, 웨딩드레스 입은 너를, 고운 한복 차림의 너를, 엄마가 된 네 모습을 어쩌면 나는 영원히 가슴 시리게 그리워할지도 모르겠구나.’

 어머니마음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새롭게 만난 친구들과 4인조 팀을 꾸려 주말도 없이 덴스 동아리 면접을 준비하던 녀석이 흥겨운 목소리로 합격 소식을 전합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네 친구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소녀들이 하나 둘 우리 집에 등장해요.

낯선 눈동자들 앞에 가능한 가벼운 어조로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이모가 눈이 아파서 너희들을 전혀 볼 수가 없어. 그래도 우리 유주 얼굴 긴 건 안다. 얘들아 인간적으로 유주 얼굴 좀 길지 않니?”

씩씩거리는 유주도 깔깔거리는 친구도 제눈에는 귀엽게만 보입니다.

바른생활 부장으로 출발하는 딸아이 중학교 생활이 그저 건강하면 좋겠습니다.

아빠는 바른생활하는 사람 아니고 할 사람을 부장으로 뽑은 거 아니냐며 놀려대지만, 실장에 도전했다가 낙방하여 바생부장이 되었다는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해지지만, 대책 없이 해맑은 우리 딸 그 고유의 에너지로 학급에서 ‘바름’의 활력소가 되면 좋겠어요.

 마스크 벗으면 진짜 이쁘시다는 1학년 3반 담임선생님과 유선으로 상담했습니다.

“그저 잘 부탁드립니다. 성격이 급해서 실수가 잦아요. 오지랖퍼긴 하지만 인정은 많은 친구니 부디 예쁘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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