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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01. 2023

착화제

나의 폐경일지 5

종이에 불이 붙이면 빠른 속도로 연소한다. 그러나 ‘불멍’을 위해 장작에 불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잘 마른 장작을 무너지지 않게 쌓고, 신문지에 불을 붙여 장작더미 밑에 넣는다. 종이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고 불씨가 되도록 적당한 강도와 방향까지 고려하며 부채질을 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겨우겨우 불을 붙인다. 여기까지는 ‘라테’다. 최근에는 액체형 불쏘시개가 이 모든 과정을 대신한다. 착화제를 장작에 뿌리고 불을 붙이면 끝. 쉽고 간단하고 빠르다.


주변의 갱년기 여성들을 지켜보면 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착화제를 뿌리고 다니는 듯싶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삽시간에 그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다. 그 마음의 주인들은 왜 불이 붙는지 이유도 모르지만 하여튼 열불이 난다.


갱년기 이전에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타인의 불친절한 말, 태도, 행동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포용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애정을 베푸는 행위에 행복감을 느끼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만족감도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해 어떤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내 노력을 타인이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즉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갱년기가 되면 사람이 달라진다. 그들은 이제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내가 왜?’라는 생각은 마음의 면적을 쪼그라들게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울화’는 내 몸의 물리적 면적을 넓히는 에너지로 작용하고, 인간에 대한 ‘불신’은 마음을 바싹바싹 말리는데 작용한다. 가뭄의 논바닥 마냥 갈라지는 마음.


상처는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상처는 고립으로 이어지고 인간관계를 축소한다. 결국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또다시 내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반복되는 과정. 이런 게 인생인가? 인간관계는 늙어서도 젊어서도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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