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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리 May 27. 2021

8. 띵동, 고객님의 신혼이 연장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은, 한 달 더 연장된 우리의 신혼생활 이야기

언젠간 웃으며 돌아볼 난임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 난임을 겪고 있는 이웃의 지인 분이라면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임신 성공을 기원합니다.

한 달의 방학이 주어졌다. 인공수정이 종결된 후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동안 고생한 난소와 나에게 주는 한 달간의 휴식이다. (의사)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숙제도 열심히 해서 생긴 선물이 휴식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이왕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앞으로 임신이 된다면 정말 바쁠 것이고, 혹여나 이번에 실패한다 해도 더욱더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지금 이 타이밍에 휴식시간이 주어진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번 달은 정말 몸과 마음이 편하게 살짝 남 탓도 하면서 '아휴 참 의사 선생님이 한 달은 푹 쉬라네, 어쩔 수 없지~' 라며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우리 부부에겐 그동안 막상 쉬고 있어도 '임신준비중'이라는 일정이 늘 따라다녔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로부터 한 달간 자유롭게 됐다.


우선 임신을 했거나 아이가 있는 친구들에게 가장 무엇이 그리운지 물어봤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남편과 둘만의 데이트'가 그립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부부는 아이가 없는 부부와 아이가 있는 부부로 나뉘는데 부부의 동반인생이 대략 60년 정도라 가정했을 때, 아이가 없는 부부의 시간은 길어야 5년 정도이고 나머지는 아이와 함께 가족을 구성해서 살아간다. 비율로만 따져도 아이가 없는 단 둘만의 시간은 부부의 인생에서 굉장히 짧은 편이었다.


나 역시 보통의 부부들의 평균에 춰 빠른 기간 내 2인 구성의 부부기간을 끝내고 아이가 있는 가족을 구성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인생계획 Plan B를 좀 더 즐기기로 했다.


"띵동, 고객님의 신혼이 연장되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인생에 한 번뿐인 달콤하고 풋풋한 둘만의 신혼기간이 한 달 더 연장되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결혼 후 고작 2년 후라 리마인드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지만 상관없다. 왜냐하면 우린 단둘이서 지지고 (깨)볶는 신혼부부니까.


<신혼여행 이야기>

첫 번째 진짜 신혼여행은 하와이를 다녀왔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곳 이야기를 한다. 미미(美味)를 외칠 만큼 맛있었던 것도 그곳에선 흔한 화산 속 용암도 한번 못 봤지만 하와이라는 미국의 관광지 섬 하나가 우리에겐 추억이고 아름다운 기억들로 가득하다. 신혼여행이란 참 별거 없이도 특별했다.


이번에는 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임신을 하면 가기 어려울 것 같은 가장 장거리의) 남해로 떠났다. 목적지를 향해 왼편엔 바다를 두고 오른편엔 초록의 산속을 달리니 하와이 때 느꼈던 들뜨고 설렜던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좋고 아름답고 싱그러운 것들을 보며, 그리고 항상 내 옆에 있어줄 남편과 함께하며 지쳤던 마음속을 예쁜 생각들로 채웠다. 마음은 상쾌하고 기분도 좋았다.


노키즈존까지는 아니어도 아이들이 있다면 갈 수 없을 것 같은 산 중턱의 카페에 올랐다. 둘이 앉기에도 비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언제 갑자기 못 먹을지 모르는 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바닷바람이 불었고 남편과 오랜만에 온전하게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했다. 

그날의 숙소는 큰 맘먹고 바다가 보이는 고급 리조트로 예약했다. 결혼  여행용 적금을 모아둔 것이 있어 이번 계기로 해지했다. 이번이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의 묘미는 누가 뭐라 해도 돈을 마음껏 펑펑 쓰고 오는 것이니 말이다.  


리조트에 신혼여행 패키지가 있어 그것으로 예약을 했는데 신혼부부를 위한 이것저것들- 스냅사진 용품과 케이크, 와인이 포함된 식사권 등을 제공해주었다. (임신이 되었을까 아닐까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몸이기에 회 코스요리와 함께 소주도 한잔 하고 케이크와 함께 와인으로 분위기도 냈다. 지금 이 경험들을 즐거워하는 나와 웃고 있는 남편,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 둘 생각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일정 중에 틈틈이 임신과 관련된 노력도 했다. 소원을 잘 들어주신다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인 금산 보리암에 올라가 남편과 두 손을 꼭 잡고 소원을 빌었다. 비록 비바람이 몰아쳐 아름다운 남해의 절경은 보지 못했지만, 천둥 번개를 뚫고 끝까지 올라와 빈 소원이니 더 들어주시지 않을까 기대해보았다.  


다랭이 마을에 있는 암수바위 중 기운을 준다는 임산부 바위(?)의 배도 열심히 쓰다듬어주고 왔다. 제주도에 갔을 때도 돌하르방 코를 열심히 만지고 왔었는데 남해의 암수바위와 돌하르방 중 어떤 기운이 더 좋은지 한번 두고 보아야겠다. 그 누구든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다!

임신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서인지 그리고 그것이 딱 이번 한 달 만이라는 생각을 해서인지 주어진 2박 3일의 일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7,300km 떨어진 하와이로 떠났던 신혼여행 때만큼 즐거웠다. 다시 또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몸과 마음이 정화된 것을 느꼈고 우리 부부 사이도 다시 한번 더 단단해졌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비록 우리는 아직 난임부부일지라도, 여전히 행복하다. 

단지, 부부라 불리는 60여 년의 인생에서 남들보다 신혼의 비율이 조금 더 길어진-

둘만의 시간이 조금 더 많아진 행복한 신혼부부다.


부부의 인생은 길다.

언젠가 추억이 될,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둘만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자.

이번 달도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한 달 더 신혼이 연장된 난임부부들 모두 그 시간을 즐기시길. 우리 모두에게 언젠간 아이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지금처럼 노력하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꼭.




우리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있잖아요.

노력의 크기가 다르고 방법이 달라서 조금 차이가 나나 봐요.

이번에는 아마도 나보다 조금 더 간절하고 더 오래 노력한

다른 부부에게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지금의 행복한 둘만의 신혼기간을 조금 더 즐기면서 조금 더 노력하며 지내봐요.

아마도 그다음 순서는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언젠가. 반드시. 꼭.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아이는 찾아올 거예요.


우린 난임부부라 불리지만 진짜 이름은 행복한 신혼부부란 걸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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