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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리 May 20. 2021

7. 니가 나를 알아?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은, 네가 모르는 나의 내가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

언젠간 웃으며 돌아볼 난임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 난임을 겪고 있는 이웃의 지인 분이라면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임신 성공을 기원합니다.

요즘은 참 신기하게도 임신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라 이제 새로운 임신은 주변에 없을 줄 알았는데 나보다 두 살 위인 언니부터 동갑 친구까지, 출산율 역대 최저라는 말의 조사가 제대로 된 건지 궁금할 정도다.


이날은 나와 동갑인 친구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날이었다. 연예인 이야기, 요즘 이슈 등등 영양가는 없지만 웃음은 보장해주는 대화들을 하던 중 친구가 갑자기 임밍아웃(임신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을 했다.


"얘들아. 갑작스럽지만 나 할 말 있어.. 나 임신했어..아들이래..!!^^"


결혼한 지 3년 정도가 됐고 임신을 정말 원했으며, 꾸준히 준비한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성별 확인과 함께 안정기에 접어들어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다들 축하인사를 전했고 나 역시 부러운 마음을 잠시 보내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단체 채팅방 멤버는 대학 친구들로 총 6명이다. 그중 3명은 2014년 아이를 출산해 자녀 3명이 모두 동갑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명이 임밍아웃을 한 친구와 다른 한 명, 그리고 나다.

먼저 결혼한 세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참으로 놀랍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우리 나머지 셋의 아이도 동갑 친구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깝다는 농담 섞인 말을 ㅋㅋㅋ라는 웃음과 함께 했다. 그러자 그 친구의 말이 나를 잠시 멍하게 만들었다.


"너도 노력을 해"


하긴, 친구들에게 내가 어떻게 임신을 준비했는지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최근 인공수정을 했다 실패했었다는 무거운 말들은 하지 않았었다.


매일 계획표를 세워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남편과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매달 진료실 의자에 앉아 하나씩 자라나는 난포들에 기뻐하고 터지는 생리에 또 울고, 차가운 시술(수술) 방에 앉아 임신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살짝씩 느껴지는 아픔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참았다는 말들은 다른 곳에 꺼내본 적 없다.

그렇지만 이런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네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너무 쉽게 '노력을 해'라는 말을 하는 것일까?


말의 의도가 궁금하고 내 노력을 몰라줘 속상하고 화가 났다. 임신에 성공한 자는 그리 쉽게 임신이 안되어있는 사람들에게 '넌 노력이 부족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내 상황과 과정들을 공유하지 않았던 터라 내 상황을 몰랐을 그녀를 이해해보려 애쓰며 '잠시 일 보러 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채팅방을 닫았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흘러나오는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남을 험담을 하는 일은 참았어도 어찌 나의 임신에 관해 이리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도 누구보다 날 이해해 줄거라 기대했던 임산부라는 사람이 말이다.


단체 채팅방에 지난번 실패한 인(공수정)밍아웃을 하며 무안을 주고 사과를 받을까, 개인 채팅방을 열어 네가 나에 대해 뭘 아냐며 톡 쏘아붙일까 하다 임산부에게 그러면 안될 것 같아 찬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누워버렸다.


자려고 눈을 질끈 감았더니 눈물이 또르르 하고 떨어졌다.

 


그녀의 이야기

결혼한 지 3년 차인 우리는 처음부터 아이와 함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길 원했다. 허니문 베이비를 꿈꾸며 신혼여행지에도 우리의 관심사는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성과는 없었던 임신을 위한 출장 같은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업무상 지방 출장이 많은 나와 주말에만 서울로 올라오는 남편. 우리는 남들에게 주말부부라 불렸다. 그만큼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도 임신할 기회를 갖는 것도 어려웠다. 누군가 주말부부는 젊을 때 연애하는 기분이라며 속 모르는 소리를 했다. 그 말대로 주말을 뜨겁게 보내긴 했으나 서로에 대한 반가움보단 남들보다 짧은 임신 가능 시기에 맞춰 최대한 확률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다행히 우리에게 비교적 일찍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아기천사라고 하기엔 아주 작은 점 알갱이였지만 그 점을 보고 또 보며 기뻐했다. 두 번째 병원에 간 날, 작은 점 사진 하나를 가지고 친정과 시댁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평생 무뚝뚝한 줄 알았던 아빠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해 주셨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 번째 병원을 방문한 날,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테스트기도 진하고 지난주까지만 해도 피검사 결과도 좋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나 보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했고 매일 좋은 음식을 먹었다. 혹시 몰라 다른 큰 병원도 찾아가 보았다. 이 곳에선 더 슬픈 소식을 들었다. 나이도 있고 위험하니 바로 소파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여기 아이가 있는데요. 제 초음파 사진 한번 보세요.

결국 나는 7주 차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내 자궁에 잠시나마 작은 점으로 존재했던 그 존재를 지우고 난 뒤 엄마는 아이를 낳은 것과 같다며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미역국을 먹으며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울고 또 울었다. 두 달간 몸조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인사팀에서도 처음 겪는 유산휴가를 보내고 와보니 일은 전보다 더 바빠졌고 주말부부생활은 여전했다. 대신 나는 혼자 약속 하나를 했다. 다음에 아이가 생기면 누구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겠노라고. 그로부터 2년 3개월 뒤, 다시 한번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다. 이번엔 임신테스트기의 두줄에도 피검사 수치에도 덤덤하게 반응했다. 너무 기뻐하면 꿈처럼 깨버릴 것 같았다. 방방 뛰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16주를 꼬박 남편과 단둘이 기도했다. 그리고 16주 후, 이제 정말 안정적이라는 병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아이가 다시 날아가지 못하도록 꼭꼭 붙잡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주변에 조심스럽게 기쁨을 알렸다.


"얘들아. 갑작스럽지만 나 할 말 있어.. 나 임신했어..아들이래..!!^^"



사실 위의 이야기는 그녀가 조심스럽게 꺼낸 첫번째 유산경험을 토대로 내가 지어 낸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겪었을 3년 간의 스토리는 내가 모두 알 수 없다. 아무 일 없었다면 감사한 일이겠지만 내가 만들어낸 이런 유사한 일을, 어쩌면 내가 감히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로 감당할 수 없는 나보다 더 아픈 경험과 상처들이 있는지는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이다.


한 때는 그 친구의 한마디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나의 임신 준비를 쉽게 생각한 그 친구가 미웠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내가 처한 상황, 나의 노력, 숨겨진 이야기를 모르듯

나 역시 그녀가 처한 상황, 노력, 숨겨진 또는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모른다.

누군가 나의 임신에 대한 노력을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바라듯이

나 역시 누군가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한 숨 자고 난 뒤,

나는 아무 일 없던 듯이 '지난주 놀면 뭐하니 봤어?' '우리 언제 만나지?' 하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갔다.



세상에 사연 없는 난임이 없듯이

사연 없는 임신과 출산도 없을 거예요.

누군가 나의 난임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상처 받지 마세요.

그들은 단지 나의 숨은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할 뿐이라고, 자신이 겪고 있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만 생각하느라 남을 보지 못했을 뿐이라고. 언젠가 우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위로해주는 그 날이 올 거예요.

나중에 웃으며 들려줄 우리의 난임 이야기는 꼭 아름다운 엔딩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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