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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리 May 13. 2021

6. 임산부보다 더 임산부 같은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은, 임산부를 꿈꾸며 인공수정 후 2주간의 기록

언젠간 웃으며 돌아볼 난임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 난임을 겪고 있는 이웃의 지인 분이라면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임신 성공을 기원합니다. 

3년의 연애와 1년의 신혼기간 동안 피임을 통해 임신을 하지 않았던 우리 부부는

한 때는 '인생을 계획적으로 사는 현명한 부부'라 자부했다.

그러나 1년간의 자연임신 시도가 계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하자, 우리는 '임신이 되지 않아 육아 시기를 놓친 실패한 부부'로 치부되고 말았다.


결국 몇 번의 자연임신 시도를 실패한 후 남편과 상의하여 보조생식술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 남편은 보조생식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매달 마음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는 그리고 인공시술이 그리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적 설명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바뀐 케이스다.


가끔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에 관련해 '부모님께 말해야 하나요' '시댁에서 너무 싫어하시네요' 등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성공 여부가 걱정돼 숨길 수는 있어도 그걸 왜 싫어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자연적인 관계로 아이가 생기면 정말 좋겠지만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인데 말이다.


옛날이야 국영수 교과서만 가지고 입신양명하는 것이 정석이었다면, 지금은 성공하기 위해 새벽마다 줄을 서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니고 수백만 원의 족집게 과외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당하자 난임부부들이여! 그리고 나여..!   


난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인공수정이라 하면 대부분 시험관 시술을 떠올린다. 채취된 건강한 정자들만 모아 카테터라는 기구로 나팔관 근처에 풀어주는(?) 인공수정과 외부에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 뒤 자궁에 착상시켜주는 시험관 시술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과 시험관에 3일, 5일 배양이나 이식 같은 과정도 잘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임신을 희망하는 많은 부부들이 이 차이를 알기 전 성공하길 바랍니다.)


한 때는 나 역시도 전혀 관심 없던 시술 과정이었지만, 임신을 준비하며 온갖 유튜브와 블로그, 카페 등을 돌아다니며 이론과 노하우들을 섭렵했다. 이제는 산부인과 서당개 수준으로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의 차이를 정확히 알게 됐다.


그리고 인공수정은 자연임신 성공률과 크게 차이가 없으며 시험관이 인공수정에 비해 훨씬 높은 성공률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인공수정을 먼저 시도해보기로 했다.

비용 차이도 있겠지만 그냥 단계를 거쳐가고 싶었다. 인공수정이 시험관 전 단계라는 그런 공식적 설명은 없지만 아마 내심 마음속에 큰 문제가 없으니 '인공수정을 해도 충분히 성공할 것 같다'라는 기대감과 '혹시 성공률이 가장 높다는 시험관마저 바로 실패하면 나는 이제 어쩌지'하는 두려움이 동시에 있었던 것 같다.


과배란으로 자연임신을 시도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인공수정도 우선 과배란부터 시작된다.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난자들을 많이 생성시키기 위함인데 이번엔 약뿐 아니라 배에 스스로 놓는 주사도 처방받았다.    

*과배란은 없던 난자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호르몬의 양으로는 자라지 못하여 소멸되는 난자들을 약과 주사 등으로 호르몬을 투여해 성장시키는 것이다.


삭제했던 알람을 다시 맞춰놓고 5일간 약을 먹고 주사를 이틀에 한 번씩 세 번 맞았다.(사람마다 처방은 다름) 아직은 나 혼자 주사를 놓는 것이 무서워 남편이 주사를 놔주었다. 임신을 준비한답시고 일여 년 전부터 다이어트도 안 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많이 먹어두어 볼록 나온 내 뱃살이 주사 놓기엔 아주 편하다고 했다. 뱃살에 감사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아이는 난자 때부터 관리해준다는 마음으로 술도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들만 먹으며 며칠 후 병원서 초음파를 확인했다.

'난포 6개가 자랐네요!' 

집 안의 경사였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아이가 6명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선생님께 참으로 오랜만에 으쓱대며 기뻐했다.

임신 카페에 들어가 보니 인공수정 준비과정에서 난포 6개는 정말 잘 된 사례라고 부러움을 받았다.


선생님께서 세 쌍둥이도 될 수 있다고 우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가족계획에 세 자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무엇인들 어떠랴. 혹시나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난자 6개 중에 하나는 되겠지. 자연임신이 10프로대의 확률이라 치면 곱하기 6을 해서 60프로의 확률이라 단순하게 계산했다. 남편과 정말 기쁜 마음으로 벌써 임신이 된 것처럼 축하의 외식을 했다.


그리고 난포가 터지는 주사를 맞은 후 며칠 후(2일) 시술 당일,

남편과 함께 병원에 방문해 시술을 기다렸다. 하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인공수정 시술 자체는 정자를 담은 카테터만 자궁에 넣어주면 되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다. 나팔관 조영술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남편과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며 아기 신발도 구경했다. 에어조던 베이비를 잔뜩 골라놓는 남편에게 '왜 설레발이야~넘 기대하지 마~'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나도 마음속으로는 잘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술 과정은 정말 간단했다. 수술 침대에 조금은 민망하게 누워있고 선생님이 남편의 정자가 맞는지 확인 후 들어갑니다~하고 끝. 초음파 기계로 희미한 나팔관을 따라 무언가가 쭉쭉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상상만 했던 정자가 나팔관을 수영해가  장면이 신기했고 아프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임신을 확인할 수 있는 2주 후까지의 시간이 남았다.      

난포가 많이 자랐기 때문에 복수가 찰 수 있어 이온음료를 마셔두라 했다. 착상에 좋다는 작약차와 대추차도 주문해두었다. 탐폰(질내 생리대)만 사용하면 속이 울렁거렸는데 착상에 필요한 질정제는 매일 기쁜 마음으로 넣었. 3일 정도 휴가를 내고 거의 누워있었다.


어떤 임산부들은 임신한 줄도 모르고 4주 차 전까지 해외에서 다이빙을 즐기고 한라산을 등반하고 클럽에서 춤도 추며 놀았던데, 나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고 자궁에 착상도 되기 전부터(일반적으로 임신이라 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노심초사 임산부보다 임산부 같은 임산부가 되었다.


어디로 이동 중 일지 모를 수정란을 위해 배를 항상 조심히 받치고 다녔다. 보양식인 추어탕을 매일같이 먹었다. 몸에 좋다는 차들을 마시고 조미료가 들어간 외부 음식은 먹지 않았다. 2주간은 외출도 자제했다. 약속도 미루고 시댁과 친정에 몸이 안 좋다고 말하고 가지 않았다. 잠깐의 산책 말고는 대부분을 누워서 보냈다.


남편은 벌써부터 임산부 돌보듯 물도 밥도 떠다 줬다. 딸기가 먹고 싶어 딸기를 사다 주고 만두가 먹고 싶어 맛있는 만두집을 찾아 퇴근길에 포장을 해왔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진짜 임산부 같았다.


다정해지는 남편을 보니 더욱 임신이 하고 싶어 졌다.

다른 임산부들은 임신을 알게 된 후 9개월간 공주대접을 받는다지만 난 수정되기 전부터 10개월을 꽉꽉 채워 공주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참 좋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주 후,

아니 정확히 말하면 13일 차.

피검사 전 절대 임신테스트기를 하지 말라는 병원의 경고(?)에도 방문 하루 전 아침에 테스트기를 해봤다.

이번에도 나타난 임신극극극초기 증상들이 정말 임신인 것 같기도 했고 혹시 만약 아니라면 남편과 함께 한참을 긴장하다 전화로 '임신이 아니네요. 이번에도 탈락입니다'라는 결과를 듣고 싶지 않았다.

사실 됐을 거라는 기대가 더 큰 게 이유였다. 테스트기를 어떻게 포장해서 남편에게 놀라게 해 줄까도 생각했으니 말이다.


결과는,

너무나 선명한 하얀색의 테스트기.

아주 희미하게도 그 어떤 선도 보이지 않았다. 테스트기를 눈을 몰아 째려보고 위로 보고 아래로 보고 구부려도 봤다. 그 어떤 선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너무나 하얬고 그 옆의 대조선은 야속하게도 너무나 진했다.


'임신이 안된 거라고..?'

처음 난임 병원에 접수했을 때, 초음파 후 의사 선생님 방에 들어갈 때, 다른 사람들의 임신소식을 들을 때,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성장 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했지만 꾹 참아두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처음으로 엉엉엉 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왜 안돼 왜 왜 왜 안 되는 거야 왜~~~!'라고 이불속에 소리를 지르며 1시간가량을 엉엉 울었다.

내 실수가 있다면 반성하거나 차라리 누굴 탓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답답함에 울었다.


왜일까.

사실 아직도 궁금하다.

왜 안 되는 것일까.

의사 선생님께도 여쭤봤지만 선생님도 알 수 없다고 하신다. 하긴 임신은 정말 알 수 없는 영역이었지..

정자에 초미니 고프로를 묶어두고 나팔관에 CCTV를 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참을 울다 병원에 물어보니 테스트기는 정확하지 않으니 내일 피검사를 하러 오라고 (희망고문을)했다. 남편과 같이 가볼까 하다가 남편에게 이런 마음의 고통을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혼자 병원에 방문해 피검사를 하고 몇 시간 뒤 '비임신이 맞네요..'라는 얘기를 듣고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


과배란 된 난소의 휴식을 위해 다음 시술까지 한 달을 쉬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혼자 엉엉 울었지만 눈물 콧물이 흐르는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다음 시술에 대한 계획을 생각했다.  

 

이렇게 나의 2주간의 임산부보다 더 임산부 같았던 임산부 놀이, 인공수정 1차는 끝났다.

참 많이 기대하고, 많은 것을 누렸고, 많은 것을 그려봤던, 그래서 더 슬펐던 시간이었다.


이제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해서 더 이상 슬퍼할 시간은 없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했고 지금은 다음 단계를 위해 몸도 마음도 휴식하고 있다.


이번 일로 너무 기대가 크면 더 많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배운 것이 있으니 다음엔 더 나은 내가 되겠지.

라고 오늘도 나를 위로해본다.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 꼭 반드시 찾아올 거예요.

그 기다림의 시간을 좋은 마음으로 즐겁게 기다려봐요.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으로 가득 찰 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행복도 두배 세배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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