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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밀리 Apr 28. 2021

4. 못된 심보

누구보다 엄마가 되고 싶은, 못되고도 어쩔 수 없는 마음 그리고 반성

언젠간 웃으며 돌아볼 난임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 난임을 겪고 있는 이웃의 지인 분이라면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임신 성공을 기원합니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 '난임'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후 못된 심보가 생겨난 건 확실하다.


평소 아픈 곳이 잦아 모임에도 종종 취소를 통보하던 친구에게 단체 메시지가 날아왔다. 

‘자궁내막에 문제가 생겨 지금 조직 검사 중이야. 심하면 자궁을 적출할 수도 있대’

지난 일 년을 자격증 준비로 주말 없이 365일 동안 근무와 실습을 병행하고 자격증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 준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하의 남편과 임신을 준비한다고 하여 (나도 성공한 적 없으나) 이론만은 빠삭한 임신 준비 방법들을 막 알려주려던 참이었다. 


자궁 문제와 심하면 적출까지 한다는 친구의 말 앞에서 우선 눈물이 핑 돌았다. 임신이란 산 앞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이것(자궁)이 될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시작점에서 출발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멈칫한 친구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채팅창이기 때문에 다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글을 썼다 지웠다가 눈물 이모티콘과 어떡해.. 별 일 아닌 거야 라는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정말 진심으로 별일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렇게 난임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구나. 나는 그보다는 다행인 상황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심각하게 건강을 걱정할 친구 앞에서 '비교적으로 다행'이라는 나의 처지에 안도했다. 친구에게 미안할 참으로 못된 심보였다. 스스로 못된 생각인 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친한 동생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주 깊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친구의 친한 동생이기도 하고 결혼을 비슷한 시기에 해서 결혼에 대해 정보들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나보다는 몇 달 뒤에 결혼하고 나보다 더 신혼을 더 즐기고 싶어 하던 그 동생이 임신을 했다고 한다. 


작년에 출산한 친구가 아기 물품들을 나에게 물려주려고 정리해 두었는데 그 동생에게 우선 몇 가지 주어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내가 친구들 사이에 (임신을 할) 마지막 순서이기도 하고 아이 물품들은 품앗이이기에 이리저리 물려받을 곳은 많았다. 아직 아이가 생기지도 않은 내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욕심을 부리는 것도 우스운 것이었다. 


하지만 임신소식을 들은 뒤 가만히 앉아 한참을 있다 보니 원래는 내 물건도 아닌 것들이 어느새 내 가장 소중한 아기용품들이 되어 중간에 빼앗긴 것 마냥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임신이란 분명 축하할 일이고 나 역시 그녀의 임신 소식에 누군가 긴 슬럼프 끝에 성공한 것처럼 기뻐해 주었다. 그런데 축하 후에 부러운 마음, 그리고 속상한 마음이 따라온 것이다. 

"당장 임신 생각은 없다더니. 꼭 그렇게 먼저 임신해야 속이 후련했냐! 흑흑"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동생의 임신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남편도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어리둥절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역시 어리둥절하다. 축하하면서 부럽고 부러우면서 밉다. 세상에 나 빼고 다 되는 운명의 부조리를 나 혼자 겪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오늘도 못된 심보 하나를 더 키워냈다. 


그러면 안되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못된 심보가 하나 둘 쌓인 나는 누구를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도 없게 되었다. 

내 마음속 꼭꼭 숨어있는 착한 마음들을 하나 둘 불러내 친구와 주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해 줄 수 있기를 나 스스로 바란다.

언젠가 꼭. 그런 날이 오겠지. 


[스스로 위로하기]

누군가가 부럽고 그에 비해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는 마음은 지금의 나에겐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이 시기가 지나고 '그 언젠가'가 오면 

지금의 미안했던 마음을 두배 세배로 담아 진심으로 위로하고 축하해 줘요

따뜻한 마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숨어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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