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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May 27. 2017

다람살라 이야기

20170527

5월도 거의 끝나가는 시간, 다람살라는 한참 더울 것이다. 6월이면 시작되는 우기를 앞두고 30도를 넘는 기온을 기록하는 것이다.


다람살라에서는 지금이 일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이었다. 오늘처럼 해가 반짝 뜬 날, 내가 사는 조기와라 마을에서 맥그로드 간지까지 걸어가다보면 흠뻑 땀을 흘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우산을 펼쳐들고 걸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택시와 오토바이가 많이 늘어난 요즘은 외국인 여행자가 아니라도 그 길을 오르내릴 때는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분위기에 뭔가 반항하고 싶어서, 혹은 20루피(한국돈 400원 정도)의 택시비가 아까워서 끝끝내 걷곤 했다. 걷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보니 점점 도로를 오가는 원숭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져, 나의 원숭이 공포증이 더 심해지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걸어서 맥그로드 간지에 도착하면 평소에는 절대 마시지 않는 레모네이드를 벌컥벌컥 마실 수밖에 없다. 평소에 마시지 않는 이유는 찬 음료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 날만은 예외였다. 아마 5월 한낮의 다람살라를 걸어 맥그로드 간지에 올라가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더위를 견딘지 그리 오래지 않아 우기가 찾아온다. 대체로 6월 초의 일이다. 우기가 시작되면 눅눅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더위에 시달리지는 않아도 된다. 한국의 장마처럼 비가 내렸다가 해가 다시 나서 습도와 온도를 동시에 올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일단 우기가 시작되어 비가 내리면 하루 종일 내리는 일은 물론이고 쉬지않고 소나기같은 비가 3-40시간씩 내리기도 하기 때문에 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낮아진다. 방 안은 온통 눅눅해지고, 빨래는 마르지 않아 쉰 냄새를 풍기는 데다가, 음식들이 순식간에 썩어 버리기 때문에 결코 환영할 수 없는 계절이 틀림없다.


그러나, 사실은 그 비오는 우기를 종종 즐겼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겠다. 비가 내릴 때의 그 압도적인 느낌, 종말론적으로 세상을 뒤덮는 번개와 천둥,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컴컴한 낮과, 전기마저 끊겨버려 할 일을 찾을 수 없어 잠자리에 드는 칠흑같은 밤. 나는 이런 것들을 내심 좋아했다. 나무가 뽑힐 듯 부는 바람이라던가, 직경 2-3cm는 족히 될 우박같은 것들, 그리고 징글징글하게 마을을 뒤덮은 채 떠나지 않던 구름인지 안개인지까지.


이렇게 적어내려가다 보니, 내가 좋아했던 것은 단지 우기만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계절이나 자연현상이 아니고, 그냥 그곳에서 펼쳐졌던 모든 일상들이지 싶다.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눈이 내리는 그 순간순간들.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사람이기도 하고, 그 장소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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