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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Apr 15. 2017

다람살라 이야기

20170415

“내가 파리에서 미시간 이야기를 썼듯 어쩌면 나는 파리를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진짜 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파리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리를 떠난 후에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어떤 책에서 했다는 말이다. 내가 진짜 다람살라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날은 내일부터인 모양이다. 다람살라에서 쓰는 마지막 다람살라 이야기를 쓴다, 그래도.


지난 5년 동안 살았던 방은 이제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물론 5년 전의 모습은 아니다. 그사이 페인트 칠을 하고, 벽에 장식용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아랫 다람살라에서 천을 떼다가 연노랑 커튼을 만들어 달기도 했으니 같은 모습이 아닐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았던 5년의 시간이 배어들어있다. 그 시간들을 뒤로하고 하나 둘 살림살이들이 문밖으로 사라졌다.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 물건들도 있고,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1,000루피를 주고 샀던 냉장고는 가구와 함께 중고로 팔아 치웠다. 그렇게 비워진 방에는 이제 침대, 책상, 그리고 철제 캐비닛만이 남아 있다. 가능하다면 이 모습 그대로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해 본다. 무엇들과 함께 살았던 것일까.


송별회를 핑계 삼아 와인을 마시기로 한 며칠 전, 놀랍게도 맥그로드 간지의 모든 가게에서 술이 사라졌다. 술을 팔던 식당도, 와인 샵(인도에서는 술만을 파는 가게를 와인 샵이라고 부른다.)도, 동네에서 제일 큰 슈퍼조차도 술을 팔지 않았다. 법이 바뀌어서라고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음주 운전 방지 차원에서 메인도로 인근 500미터에서는 술을 팔지 못하게 되었단다. 맥그로드 간지에서 메인도로 500미터 바깥은 산속 어디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우리는 슈퍼 아저씨가 낮은 목소리로 "어떤 와인이 필요하냐?"라고 묻더니 우리 가방을 받아 들고 지하실에서 술을 담아다 주는 방식으로 암거래를 한 끝에 와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엄격한(듯한) 규칙과 그것을 어기는 뒷거래가 인도스럽다, 참.


이렇게 술 구매가 쉽지 않은데도, 언제나 술을 즐기시는 집주인 싱 아저씨에겐 뭔가 요령이 있는 것 같다. 아침 일찍 맥그로드 간지에 올라가야 해서 길가에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기다리다가 아저씨를 본 것이 아침 9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취한 아저씨가 택시에서 내리는 것을 본 것이 10시 반. 대체 어떻게 한 시간 반 만에 저렇게 취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떠난다는 얘기를 일부러 하지는 않았지만, 집안의 짐을 빼는 것을 한 명 두 명 알게 되면서 록빠 직원들이 어제 갑자기 티타임을 갖자고 했다. 말도 없이 송별회를 준비한 것이다. 주인공이 되는 일에 익숙지 않지만 기쁜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축복의 뜻으로 걸어주는 카닥을 받았다. 한 장 두장 카닥을 받다 보니 쑥스럽게도 눈물이 났다. 직원들이 갹출해서 마련했을 선물은 티베트 전통 문양이 그려진 베개 커버와 침대 커버였다. 세상 어디에 가더라도 이 문양을 베고, 깔며 티베트와 티베트 사람들을 기억하겠지. 


요즘 유행하는 말대로 유목민(혹은 떠돌이, 조카 태경이는 도망자라고 함)으로 살다 보니 굳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별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가벼운 이별이 되기에는 너무 깊게, 오래 살아버리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이별은 언제나 쉽지 않다. 좀 더 가볍게 살았어야 하나라고 가끔은 후회하지만, 물론 소용은 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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