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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Apr 03. 2017

다람살라 이야기

20170402

겨울 추위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면서 맑은 날이 많아졌다. 다람살라에 살면서 일기 변화에 민감해졌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는 때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제 2주일 후면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남아있는 매일매일의 날씨와 사건을 온전히 느끼고 기억에 담아두고 싶다.

생각해보면 지난 6년 안 다람살라에 살면서 느끼는 날씨와 풍경의 변화는 언제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템플 로드에서 바라보는 낙조라든가, 집으로 내려오는 조기 와라 로드에서 아랫마을인 로우 다람살라나 깡그라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라든가, 눈 덮인 히말라야 산자락인 트리운드와 그 너머 봉우리인 문픽의 자태 같은 것들은 해마다 질리지도 않고 사진 속에 담았던 것들이다. 놀랍게 푸른 하늘, 11월에 피는 벚꽃, 하늘을 가르는 새들, 나비들, 새싹이 돋는 물오른 나무, 어둠을 가르고 떠오르는 보름달 같은 것들을 나는 찍고 또 찍었다. 그렇게 사진 속에 혹은 마음에 기록한 모든 것들조차 결국은 희미해질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다람살라의 자연에 푹 빠져 살던 때의 일이다. 3년 전쯤 자다가 한밤중에 문득 깬 적이 있다. 대개는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물을 마신 뒤 다시 잠자리에 들기 마련인데, 그 날은 이상하게 베란다에 나가보고 싶었다. 꽤 쌀쌀했던 걸로 봐선 겨울이었을 것이고, 추위에 약한 내가 선뜻 베란다에 나갈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뭔가 밖에서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숄을 걸치고 베란다에 나가니 우수수 쏟아질 듯한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다람살라에 살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맑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달과 별의 모습을 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3000미터 가까이에 있는 트리운드에 올라가 보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인 편이니까 내 방 베란다에서 보는 별들 정도야 새삼 감동적 일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날의 밤하늘은 뭔가 달랐다. 검은 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별 하나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이 모두 또렷한 존재감을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숄 하나를 걸친 채 수많은 별들과 마주서 있는 같았다. 그 느낌이 얼마나 생생했던지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던지 나는 추위에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몇 년 전에 네팔의 시골 마을에서 스테이를 할 때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하늘의 별을 보고 플래시를 하늘로 비춰보다가 내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불빛이 너무 불경스럽게 느껴져 황급히 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날 내 방 베란다에서 본 별들은 그런 장엄하고 숭고한 느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생생한 존재감, 그 말로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한참을 서 있다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방으로 들어와 이불속에 몸을 묻었지만, 따뜻한 이불보다, 내 방보다, 그 밖의 공기보다 멀리 있는 별들로 가득한 우주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끼며 잠이 들었다.

그 느낌을 어떻게 하면 설명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다시 그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신비주의를 믿지 않는 내게 일어난 참으로 드문 신비한 체험이다. 그 후로 가끔 한밤에 잠이 깰 때면 베란다로 나가볼 때가 있다. 그 느낌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저 내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우주의 성실함을 확인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 아닐까. 어젯밤에도 베란다에 나가 보았다. 여전히 은하수가 하늘을 둘로 가르며 희뿌옇게 지나고 있었고, 내가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북두칠성과 시리우스 자리를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봄밤의 공기만을 느끼다 돌아와 다시 잠이 들었다. 이제는 이 밤을, 별들을, 이런 식의 우주를 느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머지않아 나는 이곳을 떠나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라면, 나와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저 옛날의 천동설론자들이나, 요즘의 평면 지구론자들 처럼 별이란 지구를 둘러싼 구형의 천장에 매달아 놓은 장식품이나 반짝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수십, 수백광년을 달려온 저 빛의 존재가 얼마나 강렬한가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조차도 다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가 그 느낌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일단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별들을 그냥 무심히 바라볼 수 없다. 다람살라가 아닌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무언지 알 수 없지만 그것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그 느낌이 별들이 그날 밤 내게 안겨준 선물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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