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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May 28. 2016

나의 산티아고記-5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물음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한국에 갔을 때다. 오랜 지인이 물었다.

"그래, 그렇게 오래 걸어보니 뭘 느꼈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좀 더 알게 되었어요."

"그건 거기까지 안 가도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글쎄요. 거기에서 알 수 있는 '나'가 또 있더라고요."


인간의 최대 관심은 자기 자신이다. 인간은 자아를 정립하고 단단히 다져가는 데 인생의 전반부를 쓰고, 그렇게 단단해진 자아를 파악하고, (필요한 경우) 해체해 다시 정립하는 데 인생의 후반부를 쓴다. 그러니까 10대 이후 30대 중반까지 스스로 나에게 물었던 "나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했다. 오히려 "나는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라고 물었어야 했다는 걸, 이미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어버린 이후에야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인간인지 알아가고 있다.


물론 그보다 뒤늦게 자아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어떤 인간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아야지 라는 자각 따윈 없이 어느새 자아는 형성되어 버린다. 헤세의 표현대로라면 완전한 인간이 아닌 채, 반은 물고기이거나, 반은 동물인 채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 '난 누구지, 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치명적인 질문을 (참으로 실수에 가깝게) 던지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알게 된 나는 고통 앞에서, 낯선 상황에서, 고독 속에서 손쉽게 민낯을 드러냈다. 안다고 생각한 나는 전부가 아니었고, 굳건해 보였던 자아의 외투는 옷을 벗어던졌다. 그것이 단지 고통이나, 고독 같은 극한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증명하거나' 포장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남에게 줄 관심 따윈 없었다.


유일한 나의 관심은 매일매일 걷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행위와 무관하게 끝없이 마음에 차오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뿐이었다. 온전히 그 질문 앞에 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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