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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05. 2016

나의 산티아고記-6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아름다운 자연, 몸과 마음을 성찰하는 시간. 이런 것들이 산티아고로 걷는 길이 주는 즐거움이라면, 여기에는 괴로움도 당연히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빈대다.


 2009년엔가 친구와 함께 라오스로 여행을 갔다가 빈대인지 벼룩인지에 물려 여행을 거의 망칠 뻔한 적이 있다. 수도인 비엔티엔에서 묵은 숙소는 외관도 그럴 듯해 보이고, 방도 무척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날 우리는 뭔가에 물린 자국을 발견했고, 그 자국은 미친 듯이 가렵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전에 인도 여행을 하며 썼던 150cm 길이의 비닐 장판을(인도 배낭여행을 하며 침대에서 자려면 맨 살이 닿고 싶지 않아진다.) 깔고 잤는데, 그래서인지 장판에서 살짝 벗어났던 어깨 부근이 주로 물려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그보다 더 심했고, 약을 구하기 위해 약국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약국 대신 국립병원을 추천해 주었고 물어물어 그곳에 갔다. 공산주의 국가라 국민들에게는 거의 무료라고 들었는데 외국인인 우리는 대상이 아닌지 꽤 비싼 약과 연고를 처방받고 나오기 직전, 의사에게 '우리를 문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동그란 몸통에 털 달린 다리가 여러 개 붙은 벌레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과 연고를 열심히 먹고 발랐지만, 가려움의 고통은 한 번에 가시는 것이 아니었고, 우리는 일단 다음 일정대로 방비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래프팅, 카야킹의 명소에, 여행자들이 매일 같이 파티를 즐긴다는 그 방비엥에서 마침 우기라 철철 내리는 비와 함께 숙소에 처박혀 몸을 벅벅 긁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밖에 나갈 때는 덥고 습한 날씨인데도 징그럽게 울퉁불퉁 부어있는 어깨와 팔을 감추려 긴소매 옷을 입고 헐떡이다 보니 지옥이 따로 없다.  tvn에서 했던 '꽃보다 청춘'을 보니 방비엥이 거의 천국처럼 그려졌던데, 우리에게는 끔찍한 기억뿐이라니. 물론 방비엥 탓이 아니라 빈대에 물려 비 오는 방비엥에 오게 된 우리의 운명 탓이었지만. 옷과 짐을 햇볕 아래 말려 소독을 해야 하는데 줄곧 비가 내리니 그저 방안에 에어컨을 켜놓고 속옷만 입은 채 서로의 등에 연고를 발라 댔다. 재미 삼아 서로의 등에 물린 빈대 자국을 세어주었는데, 100개를 넘어 200개에 이르자 급속히 침울해져 버렸다. 


가려움이 너무 극심해서 그 유명하다는 블루 라군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빌려(꽃보다 청춘들이 한 거 다 했다 우리도.) 라이딩에 나섰지만 심지어 페달을 밟다가도 벌레에 물린 복숭아 뼈가 너무 가려워서 "잠깐!!!!"이라고 외치고 자전거에서 내려 긁어야 할 정도였다. 나는 그래도 견딜만했지만 친구는 너무 힘든 나머지 밤에 자다가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쭈그리고 몸을 와들와들 떨 정도였다. 그녀는 그 통증 때문에 진통제까지 먹어야 했다.


그렇게 방비엥에서 지옥 같은 날을 보내다가 괜히 그곳이 싫어져서 루앙 프라방으로 옮겨갔고, 아마도 나을 때가 되어서였겠지만, 루앙 프라방에 간 후부터 가려움이 줄어들면서 완전히 낫고, 날씨마저 활짝 개어 옷과 짐을 다 바짝 말릴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루앙 프라방은 무조건 기분 좋은 도시로 기억에 남겨졌다. 물론 그 자체로도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런 기억 때문에 카미노에 창궐한다는 빈대 이야기는 출발 전부터 나에게는 큰 공포였다. 나보다 한참 전에 카미노를 다녀온 L양에게 물으니 자신은 한 번도 물리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각종 대비법을 알려주고 있었고, 나는 나름의 경험으로 그 비닐 장판과 L양이 알려준 라벤더 오일을 준비했다. 거기에 버물리도 챙겨갔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며.


처음 2주는 괜찮았다. 그러나 어느 날 빈대가 찾아왔다. 손가락에 물린 자국과 가려움. '혹시 모기 아닐까, 모기겠지'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싶었지만 나날이 물린 곳이 바뀌며 늘어갔다. 어지간하면 손빨래를 하고, 세탁기를 쓰지 않던 내가 그때부터 3-4유로씩이나 하는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쓰기 시작했다. 마침 함께 걷던 K양도 나처럼 빈대의 습격을 받았고.


추석을 맞았던 어느 마을에서는 새벽에 이상한 기분에 침대를 살펴보니 빈대가 기어가고 있었는데 차마 죽이지 못해 슬쩍 아래로 떨어뜨리고는(살생을 피하려는 거였지만, 나중에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아니 다른 사람은 물리라는 말이냐'고 욕도 먹고... ㅡㅡ;;;)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고, 어딘가에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침낭에 들어갔는데 가슴팍이 가려워 살펴보니 빈대가 있었던 적도 있다. 빈대가 침낭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건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사건 이었는데, 그 시간에 세탁기를 돌릴 수도, 침낭 없이 잠을 이룰 수도 없었으니 그 밤은 정말 끔찍했다. 추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낭에 들어가긴 했지만 지옥불에 몸을 던진 기분이랄까, 인당수에 던져진 심청이 같달까. 온전히 나를 침낭 안의 그들에게 제물로 바친 것이다. ㅜㅜ


덕분에 다음 날 도착한 도시에서 침낭과 입고 있던 옷까지 대부분을 버리고 새로 장만하는 결단을 해야 했다. 그리고 또 반복되는 세탁과 건조.


사실 이때 함께 걸었던 K양이 없었다면 나의 카미노는 빈대와의 우울한 기억으로 점철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빈대에 시달리던 K양과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빈대를 박멸하자며 한 번씩 욕조가 있는 사설 호텔에 들러 가진 옷과 짐들을 싹 세탁하고 빈대 퇴치제로 목욕을 하다시피 하다 보니 조금씩 그 상황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싹 퇴치를 했다고 생각하면 3-4일 후 다시 물린 자국이 나타나고 심지어 어느 날은 머리가 느낌이 이상해 만져보니 그곳에도 빈대에 물려 부어 있기도 했다. ㅡㅡ(빈대가 얌전히 뽈뽈뽈 내 머리카락을 제치고 두피에 접근해 살포시 무는 장면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카미노 길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인터넷에는 살기가 싫어질 정도라고 표현하던데....) 괴롭기도 했고, 어느 날은 발바닥을 물려서 걸을 때마다 아프기도 했고, 머리 속의 물린 자국은 가렵다기보다 어이가 없기도 했는데, 또 한 번 호텔에 들었던 어느 날 새벽 다시 뭔가 물린 자국을 발견하고 이렇게 결심했다. '그래, 또 물렸구나. 물라면 물라지. 빈대가 내 인생을, 내 즐거움을 망치게 두지 않겠어'라고. 카미노에 오기 전부터 '빈대만은 참을 수 없다고, 만약 빈대에 물리면 카미노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던 K양은 산티아고를 거의 일주일 남짓 남기고는 아예 알베르게에서 묵기를 포기하고 호텔만 이용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빈대가 우리를 물거나 말거나, 그냥 알베르게에 자자, 그냥 우리는 즐겁게 길을 가자"고 말했다.


대략 그 무렵을 정점으로 해서 빈대의 고통에서 점차 벗어났던 것 같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도 하루 이틀 정도 의심스러운 자국이 발견되어 긴장을 풀 수는 없었지만 어느 새 그 기억조차도 점차 사라졌다.


한국에서 L양을 만나 반쯤은 따지듯이 빈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더니 그녀는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때 새삼 이해하게 된 것은 사람은 각자 자신의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누구나 산티아고 가는 길은 그 개인의 경험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비옷이 필요치 않았다던 L양과 다르게 나의 카미노는 첫날부터 폭우와 함께 시작해 잦은 비와의 만남이었고, 우산 하나 들고 가면 된다던 인터넷 카페의 조언에 따라 접는 우산을 가져갔지만 폭우 앞에서는 무용지물에 거추장스럽기만 해서 첫날 숙소인 론세스바예스에 살짜기 놓고 왔다. 그러니까 어느 가이드북에 2인실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갔던 알베르게의 소위 2인실이 관을 두 개 합쳐놓은 것만큼 울적하고, 지저분해 보였다고 해도 그 책의 저자를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겪은 대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심지어 스키 장갑을 가져가라는 조언을 받았다는 분도 만났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나의 빈대 체험 역시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는 극히 사적인, 일부의 경험일 뿐일 것이다. 우리가 두 번 살 수 있다면, 같은 순간에 다른 선택을 여러 번 할 수 있다면 몰라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시간 만을 산다. 이 사실은 어느 숙소가 좋았다거나, 어느 지역이 아름다웠다거나 하는 우리가 주고받았던 모든 경험과 정보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가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고, 내가 그곳을 선택하면 다른 곳은 나의 경험에서 배제되는 일들의 반복. 그것이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사는 우리의 숙명이다.


이 빈대 체험이 대단한 교훈을 주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내가 빈대와 싸우며 뭔가를 배워나갈 때, 누군가는 다른 것들을 경험하며 배웠을 테니. 그런 점에서 한정된 시간과 공간은 평등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무수히 행복하려고, 행복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나 자신은 칭찮해 주고 싶다. 아님 말고. 가끔 카미노를 다시 걷고 싶을 때가 있지만, 빈대를 생각하면 아직 용기가 안 난다.


사족 1. 빈대에 시달리다가 거의 패닉 상태로 침낭과 옷을 버리고 새로 구입하느라 여행 예산을 초과했다. 비난하고 싶진 않지만 빈대, 네 탓이다. ㅡㅡ^


사족 2. 이른 아침 길을 걸을 때면 생각나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는데, 빈대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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