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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07. 2016

나의 산티아고記-7

아야코와 츠요시, 그리고 나의 마리아 님

"너는 카미노를 왜 걷게 됐니?"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흔히 주고받는 질문이다.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가톨릭 신자라서, 예전부터 와보고 싶어서 등등 많은 이유를 접할 수 있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순례를 마쳤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도 종교, 영성, 스포츠 등의 순례 이유를 고르게 돼 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당연하게도 집과 가족, 친구를 떠나 스페인의 시골길을 수백 킬로미터씩 걸을 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만큼 분명하고 간절한 이유를 가진 순례자는 만나지 못했다. 아야코와 츠요시 부부.


두 사람을 알게 된 건 일본어가 능통한 윤 선생님 때문이었다. 이미 나와는 안면이 있던 윤 선생님이 한국 중년 남자분 두 분과 일본인 커플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 우연히 합석을 하게 됐다. 다들 길을 걷다가 만난 사이이다.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게 된 일본인 부부가 바로 아야코와 츠요시다. 10살 차이가 나는 이 부부는 영어도 잘 못하고, 걷기도 잘 못했지만 씩씩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유난히 속도가 빠른 한국의 조 선생님(중년 남자 분 중 한 분이었는데 정말 잘 걷는 분이었다.)을 첫날부터 만나, '저 사람만 놓치지 않으면 우린 잘 하고 있는 거야'라며 서로를 다독이며 걸어왔다고 한다. 남들보다 걷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더 일찍 출발하고 늦게 까지 걷는다는 그들은 저녁이 되어 숙소에서 조 선생님을 마주치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활달한 아야코와 점잖고 소탈한 츠요시를 보고 '좋은 사람들이구나' 했을 뿐 특별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


얼마 후 윤선생님께 들은 그들 부부의 이야기에 따르면 두 사람이 순례를 떠난 이유는 츠요시의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원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평상시엔 괜찮지만 평생 앓아야 하는 병이었다. 일본에서 버거 프랜차이즈의 점장과 아르바이트 생이로 만난 아야코와 츠요시는 아야코의 적극적인 대시로 결혼에 이르렀다. 물론 츠요시의 병에 대해서 알고도 한 결혼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산티아고로 가는 이 길을 걸으며 기도를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례에 나섰다. 전날 묵은 성당에서 나눠준 십자가 목걸이를 정말 기쁜 표정으로 걸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길에서 마주치는 그들이 더 반갑고 궁금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조 선생님을 자신들의 성 야고보(산티아고에 묻힌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인. 산티아고라는 말이 성 야고보라는 말이다.)라고 부르며 열심히 그분을 찾아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졸지에 성 야고보가 된 조 선생님은 다소 난감한 표정이긴 했지만.


반가운 마음이야 다른 순례자들을 만날 때나 진배없지만, 아니 사실 조금 더 반갑고, 꼭 순례를 잘 마쳐서 정말로 병이 낫기를 바라게 되었다. 비록 일본어를 못하는 나와 영어를 못하는 그들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고 그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다.


수십일이 지나고, 수백 킬로의 풍경과 사람과 이야기가 지나가고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감격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일정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내친김에 순례자들이 몸을 씻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바닷가 마을 피니스테라에 이어 묵시아를 찾았다. 그곳에서 순례자들은 고요했다. 진짜 순례의 끝이 그곳에 있었고 나 역시 바다의 소리를 듣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아야코와 츠요시를 다시 만났다. 혼자 바닷가에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 아야코에게 산티아고 길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Body tired, but heart more hard"라고 답했다. 육체와 정신의 고통이 어쩌고 저쩌고 40일 내내 마음속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썼다 지웠던 내가 부끄러울 만큼 간결한 대답이었다. 나도 그랬어. 우린 서로 마주 보며 heart가 hard했다는 말을 반복하며 울었다.(산티아고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아니 우리는 울보가 되었는데, 산티아고에서 순례자들끼리 만나면 껴안고 울기부터 했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참 어렵지만.) 그리고는 자신은 산티아고에 가면 뭔가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그래서 내심 실망하고 있었는데 묵시아에 와서 많이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서툰 영어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일본어를 섞어서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헤어지기 전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순간을 많이 겪었지만 그날 해질 무렵 아야코와 울면서 나눈, 대화라고 할 수도 없는 이 대화가 내 마음속의 무언가를 녹여버린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산티아고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을 때 아야코와 츠요시를 다시 만났다. 나는 혹시나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준비해 두었던 달라이 라마의 말씀이 적힌 책갈피를 건넸다. 아야코는 내게 어제 츠요시와 함께 자신들이 마리아를 만났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내게 아야코는 "네가 우리 마리아야"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말했다. "우리는 카미노에서 성 야고보도 만났고 마리아도 만났어. 그러니까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


아야코와 츠요시는 다른 성지로 이어서 순례를 떠났고 나는 산티아고를 떠났다. 그때 묵시아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가끔 들여다본다. 아야코, 네가 나의 마리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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