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의 연날리기 도전기
코 끝으로 서늘한 공기가 지나가는 탁 트인 들판. 가로질러 달려가는 아이 위로 연이 조금씩 떠오른다. 잠시 멈춰 공중에 있는 연을 바라보고 바람의 방향을 살펴본다. 하지만 이내 바람이 멈추고, 연은 바닥에 떨어져 버린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야 잘 날 수 있을 텐데. 구물구물 구름이 드리운 걸 보니 금세 눈이 떨어질 듯하다. 조금씩 불던 바람마저도 이젠 멈추어 버렸다.
아이는 학교 창체 시간에 배운 전통놀이에서 연날리기를 가장 궁금해했다. 아무래도 운동장에서 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터. 연날리기에 가장 좋은 때가 겨울이라는 말에 겨울방학을 간절히 기다렸다. (방학때 하고 싶은 일에 연날리기를 적었을 정도) 남편과 난 적당한 바람이 불만한 너른 장소를 찾아보고, 잘 날 수 있을 만한 연을 구해 나름 만발의 준비를 해둔 상태. 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눈소식이 있고, 미세먼지도 심해 계속 미뤄졌다. 언제쯤 날릴 수 있을까.
드디어 연날리기에 도전하는 날. 하지만 마음처럼 순조롭지 않다. 열심히 달려보아도, 잠시 공중을 올라간 연은 멈추면 땅으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 계속되는 달리기에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찬다. 결국 흐려진 하늘 사이로 조금씩 싸락눈이 흩날리기 시작.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렇게 호기롭게 준비한 첫 도전에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말았다.
“속상하지? 괜찮아. 그래도 처음부터 잘 되면, 다음에는 재미가 없잖아? 우리 준비해서 다시 도전해 보자.”
속상함에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아이에게 남편은 토닥이며 말을 건넨다. 함께 연을 날리려고 계속 뛰어다니다 보니 남편의 얼굴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다. 기뻐할 아이의 얼굴을 기대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벤트가 흐지부지 되어 속이 상할 텐데. 이럴 때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툭 털어 내어 버린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없다고, 준비해서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자는 아빠의 말에 속이 상해 있던 아이는 눈물을 쓱 닦아낸다.
“알았어요. 아빠. 다음에 다시 해봐요. 우리.”
자녀의 성장에 부모와의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하다. 유년기를 지나 사춘기를 맞이하는 시기, 아빠와의 관계는 자녀의 사회성 및 정서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어울려 노는 활동을 통해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그리고 아빠의 유연하고 열린 사고방식은 의외로 아이의 생각과 잘 맞을 때가 있다. (간혹 가다 너무 엉뚱하고 기발해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어이없게 하기도) 특별한 선물, 이벤트가 주는 기쁨도 있지만, 실은 아빠와 함께 하는 순간의 행복과 감동이 더 깊이 남겨짐을 아는가.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안에서 서로의 온기와 감정을 나누는 것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오티즘 아이의 경우, 부모에게서 받는 영향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관계 맺기에 미숙, 이를 센터와 공동체를 통해 배워도 일주일에 한두 시간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아이는 부모의 말과 태도, 감정 표현을 있는 그대로 기억해,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모방한다. 즉, 부모의 감정, 삶의 관점이 아이에게 그대로 물드는 것이다.
특히 아빠들은 늘 함께 하고 있는 엄마보다 아이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미숙하다. (여전히 많은 오티즘 가정의 아빠들이 자녀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어려워하는 경향도 한몫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들도 있다.) 아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선은 엄마와 아빠가 전적으로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정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아이는 자신의 긍정적인 고유함과 함께 단단한 내면을 지니게 됨을 기억하자.
교회를 다녀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이 느껴진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미세먼지도 없으니 더 좋다. 연날리기에 딱이라며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내심 기다렸다는 듯 씩 웃는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어. 아주 좋은 장소를 발견했거든.”
지난 실패를 누구보다도 아쉬워했을 남편. 분명 다음번에는 꼭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했으리라. 출, 퇴근을 하면서 눈 여겨보아둔 장소가 있단다. 그곳에서 연날리기를 해보자는 제안에 옷을 단단히 여미고 길을 나섰다.
드디어 도착!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탁 트인 하늘과 너른 공간이 있는 교외 공원이다. 가장 중요한 바람도 제법 불어 연날리기에 최적의 장소. 코 끝을 스치는 깨끗한 찬바람이 상쾌하다. 예감이 좋다.
남편과 아이는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려간다. 기다렸다는 듯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점점 높이 올라간다. 얼마 달리지 않았음에도 연이 제법 잘 난다. 바람의 강약에 따라 실을 놓았다 풀었다 하는 과정에서 짜릿한 손맛도 느껴진다. 적당히 따라갈 수 있는 바람의 방향에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얼레의 실이 다 풀릴 정도로 연은 높이 떠있다. 푸른 무대에서 바람을 타고 춤을 추며 움직이는 연을 바라보는 아이와 아빠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연이 신이 났나 봐요. 웃으면서 날아가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연에 그려진 얼굴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푸른 하늘을 이리저리 자유로이 헤엄을 치는 모습에 뭉클한 마음이 든다.(그래. 너도 지난번에는 아쉬웠지? 이젠 신나게 너 하고 싶은 대로 날아봐.)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에도 뿌듯함이 가득하다.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벤트의 성공이 주는 성취감과 아이의 행복한 얼굴이 주는 기쁨을 오롯이 누리는 중이리라.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연을 바라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일을 실제로 경험하며 아이의 세계는 더욱 자라난다. 아빠와 함께 겪은 도전과 실패의 아쉬움, 마침내 이루어낸 작은 성공을 통해 아이의 내면은 단단해진다. 더불어 아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슈퍼맨으로 마음 깊이 남겨지겠지. 이번 겨울 방학에 즐거운 추억 하나가 남았다.
추운 날씨에 꽁꽁 언 몸을 녹이러 들어온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신다. 남편과 아이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연날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다음번 결전에 날릴 새로운 연을 고르며.
이번 겨울방학에 연날리기 챌린지는 계속될 예정이다.
에헤야디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 보자
에헤야디야 잘도 난다 우리의 꿈을 싣고
(동요 연날리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