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는 반드시 성공하고 말 테다
“페이퍼블레이드 책이 새로 나온대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어요. 기도합니다. 아멘.”
12월 25일을 고대하는 아이. 네모아저씨의 새로운 책이 나온다며 기대 가득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떤 걸 받고 싶은지 물어보니, 콕 집어 네모아저씨 신간 페이퍼블레이드 히든카드를 말한다. Yes24 어플을 열어 검색, 지금은 예약구매만 가능하다. 언제 배송이 가능한지 살펴본다. 어라. 12월 26일에 책이 나온단다.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받기는 힘들겠네.
아이에게 가지고 싶은 책이 크리스마스 다음날 나오니, 다른 것을 고르는 게 어떤지 물어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달리 가지고 싶은 선물이 없다고. 얌전히 잘 기다릴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하긴 워낙에 책을 좋아하니까 이번 선물도 책을 고른 거겠지.
작년엔 아이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닌텐도 사줄까. 친구들도 많이 하지 않아? 라며 매장에 가서 보았지만, 막상 선물 받을 당사자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나 보니 게임돌이 아빠 본인이 하고 싶은데, 괜히 아이핑계를 대고 사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결국 털레털레 집으로 오다 들린 서점에서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읽고 싶은 책들을 품에 가득 골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부모들은 아이들 모르게 선물을 준비한다. 마치 첩보전을 연상하게 하듯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눈치싸움이 시작. 인기 있는 선물은 빨리 선점하지 않으면 이미 팔려버려 구하기 어렵다. 여러 쇼핑몰에서 가격을 비교, 합리적으로 준비하려고 하다가 간발의 차로 놓치고 만다. 한때 특정 브랜드 로봇이 유행할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구입하기 위해, 부모들이 추운 겨울 새벽부터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아 겨우 샀다는 웃픈 에피소드들도 있지 않은가.
더욱이 해외배송으로 시킬 경우 날짜를 계산해서, 한 두 달 전에 구입을 한다. 가격이 싸고 한정판인 경우에는 떴다 하면 바로 클릭, 구매완료 미션을 클리어해야 한다. 괜히 미루다 배송기일에 걸려 크리스마스 선물이 공중이나 바다 위에서 홀로 연휴를 보내지 않으려면.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는 아이대로, 성의껏 선물을 준비한 부모는 부모대로 속상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결국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온다는 날짜가 지나도 책은 오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배송료를 아끼려고 같이 주문한 책이 입고가 늦어져 며칠 더 있다 출발한다는 소식.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주문했지)
“엄마. 산타할아버지께서 바쁘신가 봐. 다른 친구들 선물 주느라고. 괜찮아. 난 기다릴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 못내 서운함이 가득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한 아쉬움을 참아 내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함께 주문한 내 책으로 인한 일이니 더 미안해진다. 그럼 다른 거 가지고 싶은 거 있냐고 슬쩍 물어보니, 냉큼 클레이 세트가 가지고 싶단다. 클레이를 쓰고 제대로 정리를 안 해 굳어져 버리기가 일 수였기에, 당분간 안 사준다고 말했지만 어쩌랴. 쿠팡 어플을 켜고 어떤 거 고를지 물어보니 가장 색이 많은 세트를 고른다.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가격이 두 배.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되었다. 이것마저도 안 사주면 더 속상해할 것 같아 못내 구매버튼을 누르고 만다. (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지요?)
기다리던 책은 새해가 오기 3일 전에 도착했다. 곱게 포장해서 자는 아이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신이 나서 뜯어보더니 우와 멋지다! 외치고, 휘리릭 살펴보더니 고이 책장에 꽂아둔다. 그리고는 클레이를 꺼내 가지고 논다.
“요즘은 클레이에 푹 빠졌어요. 클레이 더하다가 종이접기는 방학에 할래요.”
나를 쳐다보면서 씩 웃는다. 이미 아이의 마음에서 종이접기 책을 향한 간절함은 사라진 지 오래. 빈자리는 다른 존재로 온전히 채워졌다. 이후로도 클레이에 빠져 조몰락조몰락 노는 아이를 보며, 이럴 줄 알았으면 클레이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해줄걸 그랬네 싶다.
게다가 뭔가 계속 찜찜한 느낌이다. 뭐지. 눈 뜨고도 당한 듯한 기분은. 오호라, 그동안 가지고 싶었던 책과 다시는 사주지 않겠다는 클레이 세트 둘 다 선물로 사줬음을 깨달았다.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미안함 한 스푼, 인내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안쓰러움 한 스푼이 나의 마음에 담기어, 아이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냈다. 이런 걸 일타쌍피, 일거양득이라 하나. 그래. 뭐.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엄마의 완벽한 계산 미스였으니까.
2023년 크리스마스 선물 작전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2024년 크리스마스에는 미리 공략을 세우고 날짜 계산을 해서 반드시 성공하고 말 거다. 기대해도 좋아.
아들, 원래 크리스마스 선물은 하나만이란다.
역시, 넌 계획이 있었구나
이런 똑똑한 녀석 같으니라고
오티즘 아이들은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화와 분위기를 파악해 소통하는 것에 미숙하기에, 이번 에피소드는 어쩌면 좋은 티키타카의 신호라 할 수 있다. 상황을 인지,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것은 잘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이런 잔머리라면 언제든지 기분 좋게 속아줄 수 있을 듯. 루크야. 너 참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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