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아닌 선택입니다
지난 6월 초,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공지되었다.
마스크를 쓸지 말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아이들 마스크 착용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나였기에,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공지 내용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기쁜 마음에 제일 먼저 답글을 달았다. 다른 엄마들도 나처럼 좋아서 난리가 났겠지?
아이들은 마스크를 집어던지며 폴짝폴짝 뛰겠지? 뉴스에 나왔던 이스라엘 아이들처럼 말이다.
나만의 바람이었을까.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더 많은 이곳은 한국. 어린이집 공지글에는 "마스크를 계속 씌우겠다"는 의견이 더 많이 달렸다. 이러다 반대하는 학부모가 더 많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계속 씌우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코로나 유행 대비 어린이집용 대응지침 11판>의 정부 지침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터라 관련된 내용을 더 자세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23일에 발효된 보건복지부의 어린이집용 대응 지침에는 아래와 같이 '영유아 마스크 착용 의무 없음'이라고 분명히 명시하고는 있지만 [마스크 착용 권고 사항]이라는 명목으로 노래, 율동 등 집단활동을 할 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이 '권고'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방침이 달라질 수 있고 '집단활동'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현장에서는 혼란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데 거리두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어린이집에서 하는 활동 중에 집단활동이 아닌 활동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K방역' 대응 방식에 따라 어린이집 등 교육기관들은 확진자, 집단 감염 발생을 막으려고 온 힘을 다해 지난 2년을 보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없어지고 확진자 수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 있지만 확진자가 나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무리 정부 지침에서 영유아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아니라고 공지한다고 해도 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암암리에 강요하는 분위기를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린이집용 대응 지침은 현재 11판까지 나와있고, 내가 찾아본 문서들에 따르면 영유아 마스크 착용 의무 없음이라는 지침은 9판, 그러니까 2021년 11월, 이미 7개월 전부터 나와있던 지침이었다.
학부모들과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영유아의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라는 것, 권고 사항에 해당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원하지 않으면 (엄밀히 말해) 마스크를 쓰게 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동네에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친구와 동생에게 물어봤지만 마스크 선택 착용과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여전히 마스크는 당연히 써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 누구도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부 지침 내용을 모두 프린트해서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과 만났다. 원장 선생님과의 대화를 대략 옮겨본다.
나 : 선생님, 정부 지침이 바뀐 것을 공유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주변에 물어봐도 알고 계신 분들이 별로 없으시더라고요.
선생님 : 맞아요. 조금 큰 아이들도 그렇지만 한 살 두 살 영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그래서 학부모님들께 말씀을 드리고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저도 지침이 바뀐 것을 보고 너무 기뻤어요. 어른들도 이렇게 답답한 마스크를 아이들은 얼마나 더 답답했을까 싶어요.
나 : 네, 저는 그 소식을 읽고 너무 기뻐서 다른 학부모님들도 두 손 들고 환영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부모님들마다 의견이 많이 다르시다는 것을 느꼈어요.
선생님 : 아직까지는 조심스럽다는 의견도 있고,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겠다는 분들도 있고. 하지만 어쨌든 정부 지침에서 의무 착용이 아닌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쓰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의견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 그런데 권고 사항에 해당하는 상황에서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하나요?
선생님 : 네, 권고 사항에 해당하는 아침 체조 시간이나 특별활동 시간에는 쓰는 것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아침 체조 시간과 특별활동 시간에는 다른 반 원아들과 함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꼭 쓰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이 정도의 변화도 지금 상황에서 너무나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혼란만 초래하는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권고는 권고일 뿐 강제할 수 없다고 맞서고 싶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 천천히 변화를 유도해 나가시려는 원장 선생님의 마음에 더 많은 부담을 지워드릴 수가 없었다.
오늘 둘째를 등원시키러 갔더니 만 3세 반의 어린아이들이 놀이터로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아이들이 절반 정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이미 변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구나, 흐뭇했다.
그러나 정작, 내 아이는 마스크 벗기를 거부하고 있다.
친구들이 대부분 쓰고 있어 혼자 마스크를 벗고 있기 어색하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마스크를 벗으라는 것도 폭력처럼 느껴져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그렇게 마스크를 씌우더니 하루아침에 벗으라고 하니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선생님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만 벗고 자연스러워 할 수 있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는다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마스크 쓰기를 고수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마스크를 결코 벗을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두려움에 찬 순종적인 시민을 원했다면 정부 뜻대로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포감을 주입하면 순종적인 어른으로 자라난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증명된 듯하다.
코로나19의 공포라는 약발이 점점 떨어져 가는 요즘이지만 걱정 없겠다, 원숭이 두창이 새로 나왔으니까.
우리는 불안에 떨었고, 여전히 나약한 존재지만 한 아이의 부모이기도 하다. 마스크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라면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그곳에 마스크 선택권이 주어지기를 요구하기를 바란다. 이 땅에서 14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마스크를 강요할 수 있는 개인, 기관, 공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교육청 보건교육 담당부서 공무원님, 며칠 전에 문의했을 때 정부 지침에 관련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던 그분께도 건의드린다. 아이들에게는 마스크를 써야 할 의무가 없다는 관련 지침을 파악해 주시기를, 그리고 학교, 어린이집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코로나19의 공포에 떤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정도로 공포스러운 전염병인지 우리 각자는 진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손들고 제안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을 권리는 그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싶은 사람 권리까지 침해하지는 말자, 그저 조심스럽게 건의하자.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을 권리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