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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면 반칙이다

‘고독하고 쓸쓸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by F와 T 공생하기

진지하면 반칙이다는 자신은 없지만 류근 시인의 시적 에세이 정도로 소개할 수 있을까?그래서 그런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시적 산문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원조라는 취지로 농반진반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


사실 책을 잘 읽지 않는다.

편향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매마른 나에게 낭만을 공급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책을 가까이 두려 노력한다. 거의 극기에 가까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류근 시인의 시적 에세이 ‘진지하면 반칙이다’는 억지스런 극기활동에서 예외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번에 주욱 읽히지도 않는다.

일어나면 한 편 한 편 읽어가는 정도다. 폼나게 얘기하면 마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듯 류근 시인의 글을 읽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목차도 크게 의미가 없다, 운명처럼 펼쳐지는 곳을 읽는다.

이런 내게 오늘 아침, ‘위로의 전언’이 가슴에 와닿는다.


분명코 위로가 필요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가슴 아프게도 성인이 된 자식의 어설프다 못해 그릇된 행동은

성장의 과정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쉽사리 화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내가 커 온 여정 속 저지른 낯부끄러운 일들을 기억하기에

내 자식이 똑같은 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아비인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위로였다.




위로의 전언

아무리 아픈 이별에 울던 사랑도 세월 가면 그럭저럭 잊히고 지워지더라. 아무리 아픈 실패에 울던 날도도 세월 가면 그럭저럭 실패에 길들여지며 살아지더라. 모두가 울면서 태어났지만 매 순간 그 고통을 기억하며 살지 않는 것처럼 그럭저럭 고통과 껴안으며 살아지더라. 내가 나에게 전하는 이 구슬프고 막다른 위로의 전언, 모처럼 몸을 일으키자 온 군데 아프지 않은 자리가 없다. 아아, 시바.




아쉬웠던지 좀 더 책을 뒤적거렸다.

눈이 번쩍.


위로의 전언은 세월의 힘을 일러주다가도 세월에 따른 나약한 한 짐승이 늙음, 현실에 눈뜨게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일러주다가도 세월 따라 어쩔 수 없이 늙어감이라는 정반대의 진리를 일깨워준 것이다.


진리는 몸에는 이롭지만 마음에는 곱지 않다.


이런 내 마음은 ‘고독하고 쓸쓸한 일’에 끌렸나 보다.




고독하고 쓸쓸한 일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막 무슨 새들이 지구에 투신하는 소리 같으다.

이 좋은 가을날 스스로 몸을 던지는 나뭇잎들을 보자니 어디선가 많이 닮은 풍경이 생각난다.


아, 맞다. 나도 나를 어디론가 힘껏 던지는 힘으로 살아남았다. 참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었다.




자식을 키워내는 것, 나를 기억하고 나의 아비를 추억하는 것 역시

참으로 고독하고 쓸쓸한 일인 것 같다.


우숩게도

내 메모에는

똑같은 글귀가 쓰여있었다.

고독하고 쓸쓸한 일.


한 달 전에 읽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러면서 자식을 탓한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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