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런 전통, 따스한 전통

애정표현

by F와 T 공생하기

귀국 후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지낸 지가 100일쯤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방은 평균나이 60 정도 된다.

65세, 62세, 52세. 내가 막내다.


이들이 친해지는 방법은 참으로 고전적이다.


아침에 목소리로만 무심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점심에 대화 없이 밥을 함께 먹고,

저녁엔 각자의 안식처로 향한다.


각자 모니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린다.

세계 기술동향 파악과 보고서 작성, 설계를 위한 고민들, 때로는 열띤 토의와 쟁점의 정리,

격해질라치면 차 한 잔 하러 옥상에~




어느덧 추석이 다가와

늦었지만 회포를 푼다.

둘째 선배가 자리를 주선하고,

고기를 굽고, 끝없이 드리 붓는다.

첫째 선배는 이윽고 1차가 끝나기도 전에 다리가 풀린다.

둘째는 정중히 선배를 모시고 2차를 향한다.

갑자기 첫째 선배가 신참에게

선언하신다.


"이제 말 놓는다."


무려 100일 동안 서로의 초식과 공력을 힐끔거리며

함께할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고전적인 방법으로

형님 두 분께 동생이 되는

의식과 의례를 치렀다.


덕분에 집으로 가는 KTX 티켓을 취소하고, 다음 날 아침 겨우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소위 '스몰 토크'에 낯선 형님들 세대에게

술이란 대화요, 인생이요,

심지어 소박한 동료를 인정하는 의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평소 과묵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내게 허락된 공적 창조의 권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창조의 기쁨을 좋은 동료들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맘껏 즐기고 있다.


한가위처럼 밝게 빛나는 큰 기쁨을 모두와 누리고 싶다,

설사 촌스런 표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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