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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의 쓸모 Nov 26. 2022

서평 _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자본주의 정신과 소명, Soli Deo Gloria

근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일차적으로 그 이전 시대 동안에 이루어진 자본 축적이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의 발전이었다.
100p


자본주의는 개개인의 ‘영리 추구’를 동력으로 발달된 경제체제로 이해된다. 개개인의 영리 추구는 다른 말로 ‘이기심’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자본주의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근간을 탐구하고 있다. 핵심을 말하자면 베버는 위의 문구처럼 “자본주의의 정신”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그는 “자본주의의 정신”의 뿌리를 개신교의 신앙에서 찾고 있다.


개신교의 경제적 합리주의


개신교도들은 지배 계층이었을 때든 피지배 계층이었을 때든,
다수 집단으로 있을 때든 소수 집단으로 있을 때든
"경제적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두드러진 성향을 보여 왔던 반면에,
가톨릭교도들은 전자의 위치에 있든 후자의 위치에 있든 
한결같이 그런 성향을 과거에나 현재에나 보여주지 않는다.
50p


직업 혹은 경제에 대해서 개신교와 가톨릭의 결정적 차이는 “합리성”이다. 베버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 수공업 중심의 장인의 비율이 높은 반면, 개신교도의 경우 대규모 공장의 숙련 노동자나 간부층의 비율이 높다.

당연히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은 경제성이 뛰어나다. 당시의 사회 구조가 어떠했든 간에 가톨릭보다 개신교도들이 자본주의에 더 가까운 지점에서 그들의 삶을 영위했다. 베버는 이러한 개신교도들의 활동을 사회 문제보다는 “경제적 합리성”으로 보았다. 아마 이것은 경제 발전의 창조적 활동에 기여로 본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영리 추구” 말이다.


자본주의 정신과 경건주의


얼핏 보면 영리 추구와 기독교 윤리는 상반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벤저민 프랭클린은 영리 활동을 삶의 목적 그 자체로 보았다. 물질적 욕구 충족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리이자 당연한 것으로 보았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가들의 가르침과 개신교의 교리는 직업에 대한 의무와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막스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은 바로 영리 활동에 대한 당연한 의무와 개신교적 윤리와 경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세속 직업과 노동에 대한 교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신학 도서를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여러 종교개혁가들과 종파의 교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각 종교개혁가들이나 종파별로 주장했던 교리들에는 차이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교리는 발전하기도 하고 어떤 교리는 점차 힘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교리였든 결론은 비슷하게 도출되었다.


세속적 직업과 관련된 의무를 다하는 것이
최고의 도덕적 행위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오로지 각 개인이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사회적 지위로부터 주어진
"직업“에 관련해서 생겨난 세속적인 의무들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이었다.
128p



칼뱅주의를 신봉한 "성도들"의 삶은
오로지 초월적인 목표인 "구원”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들의 현세적인 삶은
이 땅에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유일한 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조직되었다.
216p


퀘이커교도들의 윤리에 의하면. 각 사람의 직업 생활은
금욕과 관련된 덕목들을 일관되게 수행하는 것이고,
각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을 진지하고 조직적이며
양심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의 확실성을 확증하는 수단이다.
즉,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인 노동"이다.
321p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것이 개신교의 교리 안에서 정립된 노동의 이유였다. 각 종교개혁가나 종파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노동은 신앙적 윤리와 연결된 것이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신앙적 의무와 윤리는 더 구체적으로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개신교도들의 믿음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직업과 노동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즉, 개신교도에게 노동의 이윤 추구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던 것이다. 자신이 노동을 통해 얻은 수익을 기부하는 것만 ‘이웃 사랑’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직업과 노동으로 사람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이었고 ‘자본주의 정신’이기도 했다.


Beruf, 소명


Beruf는 ‘소명’, ‘직업’의 의미를 가진 독일어다. 성경의 의미에서 해석한다면 ‘소명’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보더라도 기독교인의 소명을 단순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직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의 직업과 노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소명과 무슨 상관인가?

이에 대해서는 퀘이커교도들의 윤리를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 것 같다. 노동 그 자체가 아닌, “합리적인 노동” 말이다. 직업을 가지는 것 자체로도 중요하겠지만 ‘소명’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가 중요한 의미이기도 하다. 즉,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것인가” 말이다.

먼저는 합리적인 노동이란 자신의 재능과 능력(성경에서는 이를 은사와 부르심이라고 한다.)에 맞는 직업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아는 것과 계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관점 안에서는 재능과 능력(은사와 부르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현실을 보면 어떤가?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큼 고역스러운 것이 또 있던가? 출근도 하기 전부터 퇴근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지 않은가?


자기에게 정말 잘 맞는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 많아 보인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왜 일하는가>를 읽어보면 한 가지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자기에게 잘 맞는 일이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하는 일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이구나.”

막스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은 그리스도인의 소명과도 연관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다. 바로 각자가 가진 직업을 통해서 말이다. 실제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이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한하는 소명의식과 직업정신. 그리고 이러한 소명의식 가운데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윤리의식(직업정신). 막스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막스 베버가 쓴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진 사람에게 두 가지 윤리를 요구한다. 바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이다. 분명한 신념과 그 신념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 말이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에게 요구하는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명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말이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는 자본주의가 있었고, 기성세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헌신이 있었다. 그때 당시의 직업과 노동은 생존 그 자체의 의미가 강했다. '나의 생존'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족의 생존'의 의미가 더 강했다.


하지만 2022년 현재는 노동의 의미가 많이 변한 듯하다. 노동은 여전히 생계유지와 직결된 것이지만, 사실 지금은 생계를 위한 부의 축적보다는 "가치의 실현"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과거 가족 부양이 의무처럼 여겨졌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노동은 "내 삶의 만족"을 위한 경향이 강해졌다. 


자본주의 정신, 소명, Soli Deo Gloria. 모든 사람에게 기독교적 소명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독교인인 나에게 이 책은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나의 소명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 것인지 고민하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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