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이 불편한 나

by 실패노트

아버지의 소천 이후 우리 가족은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 나 역시도 장례식을 어깨 너머로 본 어린 시절 기억만 있었는데. 어느덧 내가 상주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서야 했다.


일단, 장례식에서 원하는 평수에 자리도 화장터에서 화장예약하는 시간도 마땅치 않아서 우리는 1월 1일 당일에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했다. 2일부터 자리가 나온다는 장례식장에 안내와 큰누나가 가지고 있었던 상조 팀장님께서 가장 빠른 시간은 토요일 11시라고 안내를 해주셔서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


상담을 받는 동안 들었던 생각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돈이구나 싶었다. 다행히도 나는 누나들이 어떤 것은 빼고 어떤 것은 하고 하는 식으로 또 장례식장에서 마치 무조건 이걸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선택해 놨던 것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니 그런 부분들도 수정되었다.


두 가지 마음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기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라는 마음과 또 하나는 경험상 말해주시는 것들 중에 좋은 것들도 있고 나쁜 것들도 있겠네 라는 두 가지 마음이었다. 솔직히 유쾌하지는 않았다.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너무 신경 쓸게 많다는 점이 속상했다.


아버지는 이미 우리 가족이 봤던 그 자리에서 소천하셨다. 다만 육신의 몸과 인사해야 하는 시간들이 남아있었다. 나의 슬픔은 아버지가 누워계셨던 안방 침상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많이 쏟아냈다. 완전히 없어졌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 많이 쏟아냈다. 그래서 장례식에서는 슬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오히려 자유케 되셨는데. 더 많이 슬퍼하면 그게 불효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가족들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없다. 오고 가는 손님들을 마주하며 인사드리고 챙겨야 하고 장례식 비용이 정말 어떻게 치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에 끊을 놓을 수 없었다. 또 조의금을 누가 훔쳐가진 않을지 그것까지도 걱정해야 했다.


내 안에 누구를 위한 장례식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언제 슬픔을 마주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아마도, 모든 순서가 다 마쳐진 후 집에 돌아간 그 자리부터 복잡한 마음을 추슬러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곳 하나 마음 둘 곳이 없었다는 게 나의 작은 경험을 통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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