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 알코올 의존증에서 탈출하다
비우는 삶, 비워내는 일상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소주 한잔은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좋은 선물입니다. 잠시나마 현실에서 겪는 걱정들을 잊게 해 주고 업무를 하면서 갖게 되는 긴장감을 풀어주니까요. 하지만 나에게 처해진 현실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한 채로 상처 입은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찾게 되었고, 걱정거리가 생기면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치열하게 고민의 결론을 내지 않고 술에 의지해서 고민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많은 양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셔야만 마음이 안정되었고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거의 내내 그렇게 살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꽤나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이었습니다.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부정한다고 사실이 바뀌지는 않으니 저에게 주어진 선택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던지 아니면 앞으로는 다르게 살던지...
다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철저하게 다른 삶을 살고자 다짐을 했습니다. 거의 매일 저녁에 잡혀있던 약속들을 취소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호기 있게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맹세하였습니다. 제 결심을 전해 들은 지인들에게서 '너의 결심을 응원한다'라는 반응도 있었고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라는 비판적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변하고자 마음먹었기에 이 정도 반응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처음 한 달은 잘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으레 해오던 술자리가 없어지고 나니 공허함이 커졌습니다. 인간관계도 끊어진 것 같고 그전 보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다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건데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술자리도 사회생활의 연속인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라며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더니 결국은 한 달이 넘어선 어느 시점에 스스로 술 약속을 잡으면서 의기양양했던 결심은 한 달 만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술을 안 마신다'라는 결심을 했다가 포기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지 1년 여가 흘렀을 때쯤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전에도 '책 읽기'를 즐겨하기는 했지만 관심 분야가 생기면서 말 그대로 여러 책을 찾아 탐독을 하게 되었고 시간을 쪼개가며 책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읽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그렇게도 하기 힘들던 '술을 마시지 않는다'가 필요해졌습니다. 술을 통해서 얻었던 행복감은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쩌다 술을 마시게 되어도 다음날 컨디션을 생각하면 절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딱히 결심하지 않았지만 술을 안 마신 날이 일주일, 이주일 그렇게 한 달이 되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행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상의 한 부분을 억지로 들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은 습관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무언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집중하기보다 삶의 변화를 줄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 그 생각을 하지 말야지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 게 더 효과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게 된 지 두 달째가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술을 끊었다'라고 그리고 3년이 흘렀습니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