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아 검사라고 불리는 '다운증후군 검사'
아이가 태어나기 전 중요한 준비 중 하나는 '태아보험'이었다. 나의 경제적 상황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고, 보험은 그런 변수를 방어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당장 현금 1천만 원 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보험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냥 의료비를 위한 저축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살면서 맹장 수술 한번 해본 적 없지만, 늘 불안한 경제적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실제로 갑상선암을 경험하면서 보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무튼. 태아보험은 한 달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지만 피할 수 없는 지출이다. 이미 큰 아이도 10만 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고 있다. 무려 100세 보장을 세팅해 놔서 나이 들어도 쓸 수 있는 보험을 가입한 셈이다. 그렇게 한 15년 열심히 내고 나면 아이에게 큰 힘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할수록 뭔가 좀 이상하다. 지금은 2천만 원이 대단히 큰돈이지만, 이 금액이 내 아이가 그 보험금을 수령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도 유의미한 금액일까? 이 말도 안 되게 엄청난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그게 의미 있는 금액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 한 달에 10만 원이 넘는 큰돈을 지불하고 있는데, 그것이 저 아이에게 진짜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걸까?
이 모든 고민의 시작은 '기형아검사'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아보험은 기형아검사 이전에 가입이 완료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도 가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입 때 심사가 까다롭게 들어간다고 들었다. 물론 기형아가 아니라고 판단이 된 후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대략 12주 언저리였다. 이사와 정리를 해내느라 멍 때리는 사이 나는 당장 내일 오후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형아검사.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기형아 검사는 실질적으로 '다운증후군 검사'에 가깝다. 왜냐면 12주에 주로 보는 것은 심장, 위, 폐 등의 내장기관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가를 보는 검사와 함께, 아기의 목뒤 투명대의 두께를 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건 가장 기본검사를 선택했을 때 이야기다. 보다 정밀한 검사를 진행한다면 유전자 검사나 양수검사 등을 통해 '다운증후군 발현 가능성'을 보는 것. 그러니까 단순한 기형여부만을 판단하는 시기가 아닌, 다운증후군이 발현될 가능성을 보는 시기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나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은 내가 상상해 본 적 없는 삶일 것이다. 나는 일상이 무너질 것이고, 나나 남편 둘 중 하나는 아이에게 올인해야 할 것이다. 큰 아이는 둘째 아이를 부양하는 삶으로 인하여 잉여인간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제적 여건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족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흔히들 알고 있는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 경제적 여건이 좋다고 해서 모두가 다운증후군이 발현된 아이를 편하게 케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이를 케어하는 시간과 노력이 힘들어 기관에 맡기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그 또한 너무 이해되는 바다.
병원에서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에게 3가지 옵션을 제시한다. 단순한 피검사, 유전자검사까지 확장되는 검사, 양수를 뽑아 진행하는 양수검사가 있다. 여기에 문제는 이건 어디까지나 '확률' 알려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운증후군이나 기형의 가능성은 노산일수록 높다고 하지만 그 또한 확률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노선이면 무조건 기형을 가진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확률이 높다고 하지만 막상 태어나면 아무런 기형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복잡한 유전자 검사나 양수검사 없이 기본검사만 진행하기로 했다. 돈도 돈이고 확률게임에서 완벽한 승자는 없다. 그러느니 차라리 임신 기간에라도 마음 편한 것이 낫겠다 싶은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아무튼. 나는 기형아 검사를 목전에 두고 황급히 태아보험을 가입했다. 지난번 큰 아이 가입 때는 하지 않았던 세부항목들을 다 검색해 보았고, 소위 불필요한 특약은 걷어냈다. 10만 원이 넘는 금액에서 수십 가지의 특약을 걷어내 죄소 2~3만 원은 줄었겠지 하는 수준까지 덜어냈는데 다시 돌아온 약정서는 여전히 10만 원. 진짜 10원도 바뀌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유가 뭐지 하고 찾아보니 '적립금'이 내가 덜어낸 금액을 다시 채우고 있었다. 남들은 3~5만 원 선에서 태아보험을 내게 정리한다는데 난 대충 8만 원까지는 살려둔 것이었는데 그걸 적립금으로 다시 채우다니. 약았다. 설계사에게 적립금은 걷어달라고 요청하고 이제 마지막 사인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 보험설계사 분이 마지막 치명타를 던졌다.
다운증후군 보장 특약이 있어요. 일시납이고요.
출생 후 다운증후군 발생 시 2천만 원을 주는 특약은 일시납으로 10만 원,
5백만 원을 주는 특약은 4만 원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설계사는 자신이 본 좋지 않은 케이스에 대한 사례를 풀려고 시도하고 있었고 설명은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결정은 제가 하는 거니까요라고 말하며 난 그 입을 막았다. 큰 아이 때는 받지 않았던 제안이었거니와 전기납, 그러니까 납입 기간 전체에 걸쳐 발생하는 비용이 아니라 딱 한 번만 되는 일시납이다. 나는 당장 내일 오후에 기형아 검사를 할 거고, 투명대도 같이 볼 예정인데 그 하루를 앞두고 저런 특약을 제안한다는 것이 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사이 5살이나 더 먹어버린 나이 든 엄마의 불안을 자극하는 멘트였다. 어차피 일시납이고, 또 진짜로 다운증후군이 발현된다면 그 아이의 삶을 지키지 위해 5백만 원은 택도 없는 돈이다. 그러니 그냥 10만 원 날린다 생각하고 2000만 원짜리 일시납으로 하기로 했다.
검사 당일 오전 급하게 수십 가지의 사인을 하고 최종적으로 태아보험 가입을 완료했다. 사인한 지 채 4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밀 초음파를 통해 투명대 길이는 안전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고. 나는 4시간의 불안을 위해 10만 원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불안을 약아빠진 보험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병원을 나오며 나 10만 원 날렸어~라고 말하자 남편은 날린 게 아니라 그게 저 아이를 지켰다 생각하자.라고 답했다. 그랬다. 그게 없었으면 난 또 다른 마음의 불안으로 4시간을 보냈겠지.
그렇게 12주 차 기형아 검사를 마쳤다. 매번 병원 방문에 큰 언덕 하나를 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