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돌끝맘이라고들 부른다. 돌잔치를 치룬 엄마를. 100일은 최대한 간소하게 하자 해서 가볍게 사진 찍고 양가 어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끝냈지만 돌은 좀 다르다. 일단 돈이 많이 든다. 보통 들 애들 한복도 좋은 걸로 빌리고, 거창한 곳에서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고, 헤어메이크업도 따로 받는다. 돌잔치에 초대 받은 분들은 작던 크던 선물을 하나씩 하고 우리는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식사도 정성껏 대접한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주머니와 머리가 무거워 지는건. 결국 그 모든 준비는 결혼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얼마나 무게와 돈을 담아 준비하느냐의 차이일 뿐.
돌잔치 날짜를 잡고, 장소를 정하고 돌상 업체를 정하고, 포토를 정하는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날짜도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의 생일날이 딱 토요일이었다. 그럼 생일날에 생일잔치를 해야지! 하고 양가 어르신들꼐 사전에 일정을 비워두시라 당부해두었다.
뭐든 큰아이때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은 셋팅. 그게 나의 첫번쨰 숙제였다. 단독홀을 빌려야 하고 한복이어야 하고. 큰아이때 했던 한옥을 다시 연락해보니 내가 원하는 포토나 돌상을 따로 데려갈수 없고 패키지 형태로 바뀌었다. 우린 한복도 있는데 한복까지 묶여있는 패키지여서 여러가지로 아웃. 그럼 새로운 곳을 물색하자! 하고 돌다가 누군가가 북촌에서 진행한 돌잔치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게스트하우스로도 쓰는 한옥인듯 한데 돌잔치를 위해 빌려서 케이터링 업체도 섭외해서 진행한 사례를 보고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돌상도 마침 후보에 두고 있던 곳이고, 케이터링도 그곳의 특수성을 이미 경험한 분들이 낫겠다 싶어서 같은 업체로 했다. 돌상 업체에서 떡케익도 준비해주시기로 했고 그럼 또 우리는 짐 하나가 줄어든다.
큰아이 한복은 어디에도 없는 아주 유니크한 배색이었고, 둘째아이의 한복도 그렇게 유니크하게 맞춰주고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큰 변수가 있었으니 "큰애의 취향"이었다. 큰아이는 이제 7살이고 원하는 바가 뚜렷하다. 그러면서 동생과 뭔가 컬러를 맞추고 싶어한다. 한복은 언제 맞추러 가냐고 노래노래 부르는 아이를 데리고 한복집에 갔다. 너무 많은 색앞에서 오히려 당황한 큰아이에게 한복집 사장님은 노련하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러면서도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같이 입어도 예쁠만한 컬러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복은 우리가 적당히 골라도 됬던게 맞다. 하지만 난 동생의 특별한 날에 동생에게만 주목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주목받는 그날의 옷을 누나인 내가 골랐다"는 자부심으로 함께 하기를 원했다. 다행히 아이는 너무 고운 노랑 치마에 여리여리한 연핑크를 골랐고 둘째아이의 배자는 자연스럽게 노랑으로 확정. 팔에만 색동을 넣어 예쁘게 만들어 주시겠노라 약속하셨고 2달을 기다려 받은 두 아이의 맞춤한복은 세상 고운 때깔을 가지고 있었다.
포토도 심플했다. 큰아이가 아기때 100일과 돌 사진을 찍어주셨고, 둘째의 100일사진도 같은 포토그래퍼에게 찍었다. 촬영 상황이나 환경은 바뀌었지만 사람을 바꾸지는 않았다. 둘째의 돌은 그분에게 찍고싶었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에 첫 출발을 함께 해준 포토그래퍼가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계속 같은 포토그래퍼에게 하고싶다고 해도, 그분의 일이 잘 안풀리거나 여러 사정이 생기면 작업을 접을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계속 업을 이어가고 계시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답례품도 큰아이때처럼 수건으로 준비했다. 깔끔하고 작은 자수를 구석에 넣어 그래도 돌잔치 선물임은 기억하게 하고싶었고, 짙은 색으로 실용성은 확보하고싶었다. 무엇보다 포장이 돌잔치에 맞게 알록달록 색동인 곳을 골라 선물하고싶었고 거기에 집에서 쓸 수건 여분과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드릴 수건까지 갯수를 맞추어 준비했다.
아이의 돌날 아침. 헤어메이크업을 해주실 분도 집으로 부르기로 했다. 내 머리와 화장은 어차피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적당하면 되었고, 그렇게 적당한 분을 불렀다.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아무도 안보니 괜찮았다. 다만 헤어메이크업을 부르기로 하길 잘했다 싶은건 약간의 비용을 추가하니 큰 아이의 머리를 한복에 맞게 예쁘게 묶어주셨다는 것. 적당한 비율로 야무지가 한복스타일로 머리를 땋는 것이 나같은 똥손에게는 무척 어려운일이었는데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한복이며 아이들 여벌옷이며 한바탕 이고지고 길을 나섰다. 북촌의 가장 큰 문제는 주차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8월. 찌는 복더위에 주차장이 없는 한옥이라니. 남편은 돌잔치를 할 한옥 앞에 차를 대고 아이들과 짐을 내리고 황급히 정독도서관으로 향했다. 남편의 차가 들어가고 나니 만차 표시가 뜨더란다. 아침 10시에.
한복을 입기 전 두 아이가 맞춰 입을 캐주얼도 미리 준비해두었었다. 하얀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작게 깔려있고, 해피벌스데이라고 영어로 써있는 옷이었다. 좋아하던 아기 옷 매장에서 그걸 파는걸 보는 순간 저건 무조건 쟁인다! 여름에 입힌다! 하고 가지고 왔더랬다. 해피벌스데이는 내눈에만 보이겠지만 딱 저걸 입히고 싶었고 둘이 맞춰 입으니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뜨거운 햇살아래 사진이라니. 오래찍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위기가 찾아왔으니, 그날의 주인공인 작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날의 무드에 핀트가 나간 큰아이의 분노가 문제였다. 캐주얼촬영도 하고 한복으로 갈아입고 잘 끝나는가 싶었는데 부지불식간에 입이 삐죽삐죽 눈물바람에 촬영 중단. 사진작가님은 한장이라도 더 찍고싶으셔서 속이 탔는데 우린 전혀 신경쓰지 마시라고 하고 접어버렸다. 어차피 우는 사진 찍어봐야 의미 없다. 돌상도 하고 식사를 시작할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편한옷을 다시 입히고 가족사진촬영까지 어찌어찌 끌고가니 혼이 나갈지경이었지만 식사가 나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주었다. 다행히 좋았던 리뷰만큼이나 아주 괜찮은 식사가 나왔고, 간결한 음식맛에 어른들도 대만족. 역시 행사에는 먹는게 제일 중요했다.
처음에는 "지난번에 했던 돌잔치 장소 주차도 편하고 좋았는데 왜 여기를 했냐"고 물으시던 어른들이 식사가 끝나고 나니 여기로 하길 잘했다고 반응이 바뀌었다. 예전에 돌잔치 했던 곳은 식당을 2시간 빌리는 것에 가까운 상황이었는데, 아예 준비와 정리하는 시간까지 넉넉히 6시간을 빌리는 상황이 되니 식사를 마치고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어졌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급하게 정리하고 나가지 않고 우리도 한숨 돌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렇게 모든것이 다 끝났다. 이제. 나의 두번째 아기는 인생의 가장 약하고 약한 시기를 뛰어넘어 1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