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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19. 2019

나노 단위 인생

엑셀은 사랑이다

10년에 가까운 공연계 생활이 나에게 준 가장 큰 미덕은 빚지지 않는 삶의 위대함을 배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지출도 모조리 파악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선호했고, 1주일에 한번 선결제로 결제금액을 통제해야 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던 나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던 당시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엑셀을 애용했다. 3달치 예상 수입을 시기 순으로 기록하고 그 옆에 사무실 월세, 공과금, 카드 결제액 등등을 역시 시기별로 기록했다. 나가는 돈과 들어오는 돈을 1주일에 한 번씩 확인하고 2달에 한번 나가는 수도요금 같은 자잘한 금액들로 1층 치킨집 아줌마의 원성을 듣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이 내추럴 본 새가슴은 적은 수입이기에 더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구멍이 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살았다. 그렇게 용케 빚 없는 프리랜서 생활을 영위하다가 돌고 돌아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다. 프리랜서로 살다가 월급쟁이로 사는 삶은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집이 갖고 싶어요


입사 6개월 차  화사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난 집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노마드로 살다가 따박따박 월급을 받기 시작하니 숨겨왔던 나의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독립. 나는 독립이 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일을 하면서 부모님께 의탁하는 행운을 얻었다. 연극쟁이라는 미명 하에 제대로 된 생활비를 드려본 적도 없지만 독립을 하고 싶었고,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고, 그것이 영구할 수 있도록 내 이름의 부동산이길 바랬다. 정기적인 수입은 그렇게 인간의 뇌에 엄청난 작용을 했다  


독립을 꿈꾸면서 나는 한동안 접어두었던 엑셀 관리를 다시 시작했다. 월급명세서 상의 꺼내 들고 수입과 수당, 4대 보험과 세금들을 12개월치를 기록하고 그리고 그 아래에는 건강보험, 연금, 통신비, 식비, 교통비 등 지출을 항목별로 정리했다.


신용카드에서 다시 체크카드로 돌리리라 마음먹고 최대한 체크카드를 먼저 사용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신용카드로 긁었다. 매달 월세와 자잘한 공과금들을 내기 위해 나는 얼마까지 지출을 통제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나의 통장잔고를 세팅하고 나서야 비로소 독립을 할 수 있었다. 공연계에서 비공연계로의 이직으로 인해 인상한 월급. 딱 그만큼이 들어갔다. 그렇게 2년 동안 월세를 밀리지 않기 위해서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통장 쪼개기도 시작하고, 한 달에 한번 어떤 부분에 얼마를 썼는지 결제 내역을 하나하나 분류해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1년에 한 번은 신용카드, 체크카드, 현금영수증, 저축의 비율은 어찌 되는지 나의 저축 가능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정말 얼마를 저축했는지까지 체크했다. 그 모든 시간은 언제나 엑셀과 함께였다  


그냥 돈을 안 쓰면 되는데. 소비지향적인 인간인 나는 그런 팔자는 못되었다. 월세 빼고 교통 통신 식사 등등 용돈이 한 달에 50만 원밖에 안 드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 엄청난 자제력의 힘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냥. 유전자에 없는 거더라. 나의 유전자는 그런 자제력을 탑재하지 않았다. 나는 엑셀로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 맞았던 것이다.


그러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프러포즈를 받은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엑셀을 열고 앞으로 우리가 집행하게 될 항목들과 대략의 예산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살림을 사고, 결혼식장에 드는 오만가지 비용에 이사청소비용, 중개수수료 등등 만원 단위가 넘는 웬만한 예산은 다 정리해서 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언제 조달할지 내 몫은 얼마고 큰고영의 몫은 얼마인지도 구분해두었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언제 조달할지 내 몫은 얼마고 큰고영의 몫은 얼마인지도 구분했다.


공연일을 짧지 않게 했던 지라 넉넉지 않은 생활에 익숙했고, 없는 살림에도 놀 거 다놀고 빚 없이 잘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결혼이라는 거대 이벤트 앞에서는 그런 자부심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전세보증금을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억대 빚쟁이가 되었다. 하긴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춘남녀는 결혼과 동시에 억대 빚쟁이가 된다.  


인생 처음으로 큰 빚이 생기면서 나의 엑셀표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입사 이후부터 지출액 정리를 위해 한해에 한 장씩 늘어가던 엑셀에 대출 상환이라는 거대 미션을 위한 새로운 시트를 추가했다. 그렇게 결혼을 넘기고 저축을 하던 모든 돈은 대출금 상환에 올인했다. 신혼부부였기에 1%대의 초저금리였지만 우린 남들이 깨알 같다고 말하는 (우리에겐 사과알 같아 보이는) 이자마저도 아까웠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살고 있는 빌라가 6년 동안 매년 꾸준히 얼마의 보증금을 올려왔음을, 어떤 구조로 이 건물이 세워지고 건물주가 어떻게 돈을 벌어왔는지 한눈에 확인한 나는 비장하게 새로운 시트를 만들었다. 더 이상 남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자산이 필요했다. 독립을 결정했을 때와는 또 다른 비장함이 올라왔다.


이번 전세계약이 끝나면 나는 무조건 집을 살 거야.
응? 뭘 사?
집. 집을 살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법. 세금. 회계와는 3만 광년 떨어져 살고 있는 큰고영에게 통보를 하고 아파트 매수를 위한 엑셀 시트를 만들었다.


서울이 어디에 얼마나 많은 아파트가 있는지, 또 어디가 좋은지 왜 그걸 좋다고 하는지, 오늘의 시세와 어제의 시세는 어떤지.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에 교육의 역할이 얼마나 엄청난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대출금을 열심히 갚아나가면 얼마의 종잣돈을 만들 수 있는지, 앞으로 1년 N개월 후의 시세는 대충 어느 정도 될지까지 감안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새로운 엑셀 시트에 꽉꽉 채워나갔다. 평균적으로 이만큼 올랐으니 유사한 수준으로 상승하면 이 정도의 대출만 받으면 해결이 되겠다 까지 정리했을 때 청천벽력 같은 '82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한걸음이라도 빨리 움직일걸 후회가 밀려왔다.  


대출 규제를 통한 부동산 규제 정책의 시작으로 가능한 대출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었고,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가 무색하게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거래 가격의 70%까지 최대로 대출받지 않으면 매매가 불가능한 우리의 주머니 사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이 많았고, 우린 어이없게도 그 후폭풍을 후려 맞았다. 그렇게 엑셀은 닫혔고 우연히 통화한 부동산 부장님과의 통화로 엑셀 시트는 다시 살아났다.


 연 소득 6천만 원 이하, 거래금액 5억 이하는 최대 70%까지 대출 가능해요.
상품 2개를 일으키면 돼요. 내가 이번에 그렇게 하나 계약시켰어요


그렇게 다시 '첫 집' 시트는 살아났다  부동산은 문자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물”이었다. 폭주하는 인간의 욕구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 달 사이에 천만 원 단위로 변하는 시세를 보면서 계약기간 만료 따윈 개나 주라며 아파트 매수를 강행했다.


난 이달 안에 계약을 할 거고 상반기 안에 이사를 갈 거야.
응? 뭘 한다고?
이달 안에 계약을 하고, 상반기 안에 이사를 간다고. 당신은 그런 줄 알아.


종잣돈이 부족했던 우리는 대출이 가능한 상한선에 맞춰서 집을 찾기 위해, 그 집의 위치와 주변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가양역 끝부터 염창동까지 단지 곳곳을 걸어 다니며 후보 아파트를 정했고 큰고영에게 통보한 지 3주 만에 계약을 했다.


계약과 동시에 나는 어김없이 새로운 시트를 만들었고. 중도금 상환, 대출 시기, 매수한 집과 지금 사는 집의 중개수수료, 이사비용, 이사청소, 취득세, 법무사 수수료, 새로 구입할 에어컨 설치비까지 세세하게 항목을 만들고 그 옆에 조달 방식과 집행시기, 집행 여부, 잔금 상황, 현금과 카드 사용 여부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살고 있던 빌라가 안나가 종종거렸고, 대출승인이 언제 날지 몰라 초조했고, 그 사이 정책이 뒤집어져 이마저도 어그러지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했다. 그 생 난리 푸닥거리를 끝내고 2018년 7월 드디어 이사를 들어갔고 지난해 9월 더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이 나타나기 전까지 서울의 부동산은 더 무섭게 올랐지만 우리 집 같은 쩌리 동네에는 큰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저 이제는 이사 걱정이 없이 이 집에서 쭉 살면 된다... 정도의 편안함이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정도.


이사를 하다 우연히 영수증 철 하나를 발견하고 웃음이 터졌다. 영수증 철 앞에 지출내역과 함께 월별로 모아 정리한 파일이었다. 그런 소소한 확인들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살았기에 그 말도 안 되는 박봉에도 버텼고, 그게 오늘의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엑셀은 상환의 과정을 기록하는 용도로 남아있다. (그사이 뱅크샐러드라는 훌륭한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여 개인정보 몇 가지를 팔면 엑셀에 일일이 쓰지 않아도 알아서 지출 내역을 정리해주고, 또 반성도 대신해준다.)


지난 10년간 욕구와 열망이 생길 때마다 엑셀 파일을 열었고.

나의 엑셀 파일들은 내 삶의 모든 비밀과 미래가 담긴 비망록이었다.  

걸음걸음 엑셀 없이 사는 나노 단위의 새가슴은 이제 그렇게 360개월 장기 할부 빚쟁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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