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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24. 2019

시어머니의 빅픽쳐

천주교 며느리 교회 집사 만들기

나의 시댁은. 독실한. 정말 성실하고 독실한 크리스챤이다. 나이차 나는 커플인지라 결혼을 위해 매주 교회에서 눈도장을 찍었고, 6개월만에 상견례를 하게 되었고, 너무 당연하게 교회에서 예식을 올렸다. 


딸가진 죄인이라고, 시댁에서 하자는건 다 그럽시다 그럽시다 넘어가는 통에 엄마의 전투력은 제로 상태. 나의 로망 따위는 접은지 오래지만, 우리 집도 포기할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싸움이었다. 


우야간. 결혼을 하고 나서도 교회에는 나와야 한다는 시어른의 이야기에 난 결혼허락을 위해 몇달 다니다 마는 얄팍한 인간이 아니라며 꽉찬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왠만하면 매주 교회에 나간다. 그건 일종의 오기 같은거였다. 난 해보이겠다는 오기. 결혼 초반에는 안부인사로 실갱이 아닌 실갱이도 했지만, 매주 교회에서 얼굴을 보는데 안부인사까지 더 해야하냐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우야간 그런 오기로 햇수로 3년째 일요일을 반납하고 있는데, 이 교회에 재미있는 행사가 하나 있다. 교회 커뮤니티에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함께 좋은 날을 축원하는 뭐 그런 류의 행사인데. 


그 대상은 딱 3가지. 장례. 탄생. 군부대 입대. 

장례를 치르고 온 가족들을 위로하는 기도를 하는것, 군부대 입대를 앞둔 친구를 단상에 세워두고 기도를 하는것, 갓난 아이와 그 부모를 단상에 세워두고 기도를 하는것. 이 3가지 이다. 


그중 제일 인상적인건 갓난 아가를 위한 기도인데 이건 말하자면 갓난아가의 교회 사교계 데뷔 무대같은 행사다. 예배 중간에 겁나 큰 전광판에 아가의 사진과 함께 부모와 그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름이 뜨는데, 보통은 누구 장로와 누구 권사의 아들 XX집사의 딸... 이 명명되는 것이다. 


그렇다. 교회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사들은 사실 일반 교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몇년간 착실히 헌금을 내고, 자원봉사도 많이 하고, 교육도 하고... 그 모든 절차와 과정을 거쳐 집사, 권사, 장로가 된 자들로 구성된  교회 사교계 행사였던 것이다. 


가만 생각하면 장례를 치르고 온 가족의 인사도, 군부대를 가는 아들의 부모도 다 장로 권사 집사와 관련있는 가조들의 이야기이다. XX은퇴권사님, XX장로님, XX권사님 등 각종 직을 맡은 이들의 이름이 매주 호명되고 그들의 삶에 큰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들을 수많은 교회 교인들과 공유되는 것. 


미국에 새 아가가 태어나면 신문에 아가 얼굴일 올리거나 약혼 소식을 뉴욕타임즈에 싣는 것에 의미부여 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사교계에 데뷔. 그게 그 예배시간 프라임타임에 큰 영상에 떠오른 아가와 부모의 얼굴인거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할머니할아버지, 엄마아빠 모두 '직'을 갖고 있는 것이고. 


교회에서 결혼식까지 치룬 나의 시댁이 그 행사를 놓치고 싶어할리 없고, 결혼식을 집전해주신 목사님의 은퇴 시기와 아가의 탄생시기가 애매하개 물려서 생판 모르는 분에게 기도를 맡기느니 그래도 결혼식 집전을 해주신 목사님에게 맡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그 이야기를 꺼냈다. 


보통 100일, 빠르면 50일이 지나 아이들을 인사시키는게 보통인데, 그렇게 되면 내 아이는 목사님 은퇴 이후 시점이나 되야 교회를 찾을 수 있을터. 어머님은 열심히 날짜를 계산하시더니 그래도 30일 이면 외출도 가능하다며 의욕을 불태우셨다. 


그리고 거기에 붙이신 한마디가... 


" 아이 태어나기 전에 니가 등록도 하고, 교육도 받고 그래서 집사가 되고 나서 그걸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랬다. 어머님은 내가 그냥 교회에 나가는 것 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자원봉사도 하고, 헌금도 내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더 인정받게 하고싶으셨던 마음이 있으신거였다. 그러나 그러기엔 나는 너무 그 집안에 새 사람이었고, 그러기엔 나는 아직 그 종교에 마음을 확 담았다는 확신이 없으니 선뜻 말씀을 못하셨던거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야기는 하셨지만 우리가 대충 흘려들었다. 그 시점에라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지금쯤 집사가 되어있을수도 있었겠지만. 난 지금 이상으로 그 공간에 발을 들이고 싶은 생각이 1도 없는데 말이다. 


아직. 로망이 있으신거였다. 말씀은 안하셔도 아버님이 장로가 되기를 바라셨고, 아들과 며느리가 각각 집사나 권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상태에서 첫 손주(물론 누나의 아들이 있긴하지만 외국서 살고있는데다가 심지어 그런 행사에 참여할 의사도 없....)를 교회 사교계에 선보이고싶으셨던 것이다. 


당연히 유아세례를 받게 하실꺼고. 나는 그때 또 집사인지 권사인지를 맡을 것을 종용받겠지. 유치부, 중고등부, 청년부에 거쳐 건실한 크리스찬으로 성장하게 될 아이를 배속에 담고있는 나는 아이만 보내면 될거라고 생각했던 안일한 어제의 나를 원망한다. 


난 한없이 불러오는 배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 집안에서의 다음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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