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와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은 같이 살 집을 구해야 했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출로 전세집을 마련해야 했다. 전세집은 1.5억에서 2억 사이에 다수 분포해 있었고, 지하철에 한걸음 더 멀리 걸을때마다 보증금이 만원씩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적당한 크기와 가격의 투룸 빌라를 구하고 계약을 했다. 계약금을 내고 나나서 해야할 일은 당연히 대출을 알아보는 것 이었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지 않으면 억대의 전세보증금은 언감생심이다. 계약을 하기 전 은행에 갔고, 은행에서 대출에 대한 이런저런 상담을 받았다. 평범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대출이 가능한지, 계약한 금액대비 얼마를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그렇게 대출을 받으면 이후에 어떤 서류를 내야하는지 등등.
그리고 우리는 이런이런 조건으로 이런 대출을 이만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순간 남편이 훅 들어왔다.
"왜? 세대주가 내가 되면 안되는거야!?"
대출 조건 중 하나에는 대출신청자의 명의가 세대주와 동일할 것. 도 있었다. 프리랜서인 남편과 작은 회사이지만 정규직으로 4년째 근무중인 나. 둘 중 한명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는다면 그건 당연히 나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조건에 대출신청자가 세대주일것이 들어가는거라면 그또한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대주가 된다는건 그냥 그런 이름으로 카테고리화 되는 것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하지만 다소 격양된 톤으로 욱하는 남편을 보면서 뭔가가 잘못됬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젠더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처음으로 그 생각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약간은 화도 났지만 마음의 평정을 찾고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거래하는 은행에 가서 나를 중심으로 물어 본 것이니 그럼 자기 명의로 대출을 받게되는 상황을 알아와봐."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꽤 침울한 얼굴의 남편이 말했다.
"대출은 당신 이름으로 받아야 한데. 은행에서 나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낙엽같은 존재였어"
처음은 아니었을꺼다.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다 보면 보통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평범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 되는 경우라면. 하지만 결혼을 하고, 결혼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세대주라는 존재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였는지, 세대주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꽤 오래 풀죽어 있었다.
그랬다. 우리는 평범한 부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부부였다면 남자의 명의로 집을 구하고, 남자의 명의로 대출을 하고, 둘이 열심히 대출을 갚아나가며 집도 사고 하겠지만. 우리는 예술계에서 일하는 자영업자(라 불리우는 프리랜서) 남자와 역시 예술계 언저리에 있지만 그래도 월급이라는 걸 받고 살아가는 정규직 여자의 조합이다.
나는 사무실을 따로 구하지 않고 본가에 사업자 주소를 걸어놓고, 옷방 한구석에 책상과 책장을 세워두고 옷방이 아니라 작업실이라고 고집하는 남자와 산다.
나는 밖에서 일하는 여자, 남편은 집에서 일하는 남자.
우리는 그렇게 결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