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신랑 아침밥은 잘 차려줘?

신랑이 잘 차려 줍니다.

by 김옥진

난 겁이 많다. 대범해 보이지만 겁은 많다. 그렇게 혼자 살아보고 싶으면서도 월세 감당할 자신이 없어 엄마 집에서 나오지 못한 쫄보. 초딩때 탔던 롤러코스터의 끔찍함과 바이킹의 울렁임을 잊지 못한다. 인생에 공포영화를 영화관에서 돈 주고 본건 딱 한편이고, 파충류를 극혐하며 심지어 길거리 걸어다니는 수많은 동물들을 다 무서워 한다. 일상에사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을 손에 꼽으라면 칼과 불.


그렇다. 나는 음식을 못한다. 어려서부터 라면도 못끓였다. 맛이 있다 없다의 문제를 떠나서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공포심은 극단적으로 올라간다. 뚜껑을 열어야 면을 넣을 수 있는데 그게 무서워서 아예 뚜껑을 열고 라면 물을 끓여야 했다. 라면을 넣을떄 물이 튈까바 몸이 저 멀리 가있고, 결국 동생에게 SOS를 하곤 했다. 이럴꺼면 왜 라면을 끓이냐며 타박하는 소리는 귀담아 들리지도 않는다. 난 무서우니까.


결혼하면서 동생이 남편에게 말했다.


"음식 좀 해요? 누나는 라면도 못끓여요. 그냥 못끓이는 정도가 아니고 라면 물 올리고 냄비 뚜껑도 못들어서 날 불렀다니까요. 심지어 맛도 없어. 사람이 먹을 게 못되요"


부정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음식 맛있기로 유명했던 엄마의 손맛은 내 유전자에는 없었다. 내가 만든걸 다른사람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걸로 행복하다던 친구의 말도 나에게는 전혀 유효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일단 맛있는 걸 만드는 과정을 매우 즐겼고, 그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을 행복해했다. 오죽하면 연애시절에 자취 중이던 나의 집에 있는 엄청난 화력의 가스레인지도 사랑했고, 냄비가 너무 쓰잘데 없는 물건이라며 커다란 파티웍을 배달 시키기도 했다.


결혼을 준비할때도 음식과 관련한 도구에 대해서는 나에게 전결권이 없었다. 그릇 하나, 수저 하나도 같이 보고 같이 정해야 했다.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행착오는 적은 편이긴 했으니 말이다. 그릇을 사러 가면 나는 가만히 있고 남편은 그릇의 무개, 디자인 등을 유심히 본다. 그럼 너무 자연스럽게 나에게 질문한다. 난 그저 서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결혼하니 좋으냐고 묻길래 좋다고 답했다. 결혼전의 우리보다 결혼 후의 우리가 더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우린 어떤 면에서는 매우 비슷하지만, 어떤면에서는 매우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다. 크게 보면 일의 장르는 비슷하지만 조직의 성격과 롤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결혼 후의 우리의 역할도 다른 부부들과는 현격하게 달랐다.


일단. 난 밥을 하지 않는다.


밥. 대한민국 사람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언어인가. 공연하면서도 수도 없이 생각 했다. 그노무 밥 좀 안먹고 살면 안되냐! 줘도 난리고 안줘도 난리인 그 밥에 나는 매우 무신경했고 무지했다. 재택을 하는 신랑은 퇴근하는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 문을 열면 밥냄새가 났다. 본가에서 살때도 밥은 만들어 먹곤 했지만 아마도 엄마가 시할머니에게 귀한 손주 밥굶기는 며느리로 보이는 것은 싫었으리라. 그리 적극적으로 밥을 해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의 손에 맞는 도구와 향신료들을 끊임 없이 사들였고 자연스럽게 식사는 신랑의 담당이 되었다. 나? 나는 청소나 빨래를 담당 했다. 대충 치우고 바닥을 물티슈로 닦거나 옷을 분류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다 바른 빨래를 반듯하게 개서 옷장에 넣는일은 내가 더 나았다. 신랑이 빨래를 갤때면 고장난 로보트처럼 멈춰있거나, 반듯한쪽 보다는 뭉개진 느낌이 더 강한 옷들이 보이곤 했다.


남들보다 늦어도 한참 늦은 결혼이었다. 38살에 결혼을 했고, 남들이 생각하는 적령기는 한참 지난 상태에서의 결혼이었다.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것 만으로 충분히 화제였고, 혼기가 꽉찬 후배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결혼하면 뭐가 제일 좋아요?"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밥냄새가 나"


신랑에게 아침밥은 차려주냐는 전근대적인 질문을 받으면 난 말했다.


"제가 얻어먹죠. 얻어먹는 처지에 메뉴 가리면 쓰나요."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꼭 하자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낳고 출근을 하면서 그건 더 먼 이야기가 되고 있어 늘 미안하다. 아이 케어는 내가 더 강하니 아이에게 매달리다보면 설거지는 뒤로 밀리곤 한다. 설거지가 지겹다며, 누군가가 해준 밥을 먹고싶다는 말을 할때 "그럼 사먹을까?" 라고 하면 늘 "아냐 밥 해줄께. 금방해"라고 답한다. 코로나 19로 외부에서 하는 일들이 끊긴 공연/행사기획 전문 프리랜서는 돈아낀다고 칩거모드인지라 집에 갈때 뭔가를 사들고 가려고 노력한다. 간식이건, 좋아하는 초밥이건, 소소한 꽃 한송이건.


우리 이제 집안일은 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걸 국룰로 하자.

각자 잘하는거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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