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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pr 12. 2021

'내 글' 쓰기의 기록

생각해보니 늘 뭔가 쓰고 있었다



로망이었다. 책을 내보는 것이. 특별히 뭘 쓸 수 있다 아니다 관념도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책을 내보고싶었다. 국민학교에 있던 작은 도서관에 빽빽히 꽂힌 책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갖고싶다 생각 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책들 중 내 책이 하나 쯤은 있었음 싶었다. 일을 시작하고 글을 쓰는 기회는 많았다. 글을 쓰는 행위는 업무의 50%에 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도자료를 쓰고, 홍보물을 위한 카피를 작성하고, 공연장에서 판매할 프로그램북 원고를 구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글을 써야 했다. 공연을 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공연에 대한 기억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자라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


광고 예산따위는 있을 리 없는 연극 판에 유일하게 기댈 구석은 언론홍보였다. 보도자료는 기자들의 손을 통해 재가공되고 지면에 실렸다. 공연 한편을 소개하는데 최소한 10매가 넘는 보도자료가 작성되었고(비록 이미지도 많고 공백도 많았지만) 그런 보도자료를 받아보던 어느 기자님이 말씀하셨다.


이정도 분량이면 거의 왠만한 단편소설 하나는 될 것은 데요?
등단하셔도 되겠어요.


웃자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이상하게 그 문장은 매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원고를 쓸 일이 있을때마다 나는 어느정도 양의 텍스트를 쏟아내고 있는가 살펴보곤 했다. 일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빅이슈' 재능기부였다. 친하게 지내던 어느 월간지 기자를 통해서 연결된 일이었다.


나의 글이 어딘가 지면에 실린다는 것은 매우 설래는 일이었다. 비록 돈을 받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보람되었고, 한달에 한번 돌아오는 마감에 살짝 쪼이는 느낌도 있었지만 A4  한페이지 남짓 되는 분량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편집장이 바뀌고 잡지 구성이 바뀔 때까지 2년 가까이 글을 썼던 것 같다. 당시 담당 에디터 말로는 내가 비교적 길게 쓴 필자라 했다.


그렇게 빅이슈 기고도 끝이 나고, 다시 회사생활로 돌아왔다. 보도자료, 정기간행물, SNS, 각종 홍보물 등 글쓰기를 해야할 순간은 너무 많았고, 그때마다 '나의 글'에 대한 갈증은 커졌다. 그래서 논문도 썼다. 10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걸음걸음 어려웠지만, 나의 글을 쓴다는 기쁨이 논문을 채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 임신을 했고, 널뛰는 여성호르몬은 브런치와 신용카드가 잡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닳은건 아이를 낳을 떄가 다되서였다. 아이를 낳고 휴직기간의 곤궁함은 다시 나를 노트북 앞에 앉혔다. 띄엄띄엄 써 올린 글들은 일용할 양식이 되어 돌아왔고, 시간이 지나 2권의 책으로 변화했다.


2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한권의 책은 1인출판사에서, 또다른 책은 꽤 규모가 있는 들어봄직한 출판사에서 만들었는데 더듬더듬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진행되는 1인출판과 달리 규모가 큰 출판사는 일정과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홍보와 마케팅도 달랐다. 그래도 태울 예산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기존에 마케팅 채널을 확보해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컸다.


사실 나에겐 둘다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이름을 단 책이 2권이 나왔고, 그 책들이 태어나게 된 계기가 내 아이의 출생과 관련이있다는 사실 그것만이 중요했다.


나는 글을 잘쓰지 못한다. 나의 글쓰기가 가진 한계는 내가 잘 안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로망은 여전 했고, 어떤 계기와 순간이 책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계기와 순간은 꾸준한 글쓰기가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요즘 느낀다. 독서를 끊고 산지 너무 오래되었고,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해서 더 많은 독서와 정리가 필요한 요즘, 그래도 누군가가 어떻게 책을 내게 되었냐 물으면 '그저 오래 썼을뿐'이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소소한 글쓰기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면 안된다. 왜냐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라 책을 쓰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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