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슬픈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모질게도 비바람이 저 바다를 덮어 산을 이룬 거센 파도 천지를 흔든다
이밤에도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한 손 정성 이어 바다를 비친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빛나는 가을 오후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운동장에 나왔을 때 4학년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과꽃이 가득 피어 있는 화단 옆 납작한 돌 위에 올라 까치발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4학년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우리 반 정연아가 ‘등대지기’ 독창을 하고 있었다. 가슴 앞에 양손을 마주 잡고 몸을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며 연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등대지기'와 '가을맞이' 노래는 이후로도 거의 일주일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계속되었다.
살랑살랑 실바람을 잡아타고서 오색 가을 넘실넘실 넘날아오네
산에도 들에도 예쁜 꽃으로 수를 놓으며 바다 건너 산 넘어서 가을이 오네
소를 모는 목동들은 노래 부르고 코스코스 방실방실 웃으며 맞네
둥실둥실 흰구름을 잡아타고서 금빛가을 넘실넘실 넘날아오네
산에도 들에도 붉은 빛으로 옷을 입히며 바다 건너 산 넘어서 가을이 오네
돌돌돌돌 귀뚜라미 노래 부르고 팔랑팔랑 예쁜새들 춤추며 맞네
우리 학교 여자 선생님 중에서 제일 예쁜 4학년 담임선생님은 왜 6학년 정연아를 자기 교실로 불러 노래
연습을 시킨 것일까? 정연아 아버지 때문이라고 내 나름대로 미루어 생각을 하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연아만큼은 아니어도 다른 친구들보다는 월등히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고 자부했던 나였다. 요즈음 말하는 오디션이나 테스트 그런 것은 왜 없었던 것일까. 살랑살랑 실바람도 둥실둥실 흰구름도 내게는 아름다운 슬픔이었다.
우리 학교 정민호 선생님의 딸 정연아는 얼굴이 박꽃처럼 하얀 얼굴이 참으로 예뻤다. 얼굴처럼 마음씨도 곱고 상냥한 데다 공부까지 잘했다. 노란색이나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오는 날이면 학교가 환해졌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거나 청색 공단 원피스를 입은 날이면 여자 아이들은 부러운 듯 연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안 보는척하며 연아의 주위를 맴돌았다. 여학생들 중에서 원피스를 입고 오는 친구는 연아 혼자 뿐이었다. 그런 연아를 나는 은근히 무시했고 예쁘다는 말을 한 번도 해 주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자식들을 꼼꼼하게 못 챙겼다. 아침이면 언니와 나는 옷장에서 옷을 대충 꺼내 입고 학교에 갔다. 몇 벌 안 되는 옷을 빨아서 돌려 입다 보니 낡고 없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옷차림은 연아의 원피스와는 비교도 안 되게 초라했지만 오징어 게임이나 줄넘기를 할 때만큼은 나의 빨간색 쫄쫄이 바지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내가 운동이나 놀이에는 힘을 좀 쓰는 편이었다.
“얘, 내일 육상 선수 뽑는데 너도 한 번 해 볼래?”
쉬는 시간에 정민호 선생님이 교실마다 다니며 좀 달릴 것 같은 애들을 물색하고 다니셨다. 체육 업무 담당인 정민호 선생님이 나를 육상 선수 후보로 지목하셨다. 다른 친구들보다 키가 좀 더 커서 달리기를 잘할 것 같았나 보다. 이튿날 열두 명의 아이들이 달리기 테스트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달릴 때마다 선생님이 시간을 쟀다.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벌써 우리 학교 대표 육상 선수가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지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나, 둘, 셋, 넷, 하나둘셋넷, 하나둘셋넷......”
이튿날 오후 교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호루라기 소리와 정민호 선생님의 구령 소리가 들렸다. 열 명의 아이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줄을 맞춰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어제 나와 함께 테스트를 받았던 아이들이다. 테스트에서 탈락했다고 미리 귀띔이라고 해 주었으면 덜 속상했을 텐데... 텅 빈 가을 벌판을 지나는 한 줄기 바람처럼 절망감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어느 날 친구들과 연아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연아네 집에는 책에서만 보았던 물건들이 많았다. 침대, 소파, 피아노까지 있었다. 우리들은 처음 보는 물건들을 보고 ‘와’를 외치며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하였다.
연아 언니는 작은 방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책을 보고 있었다. 연아보다 두 배는 더 예쁜 언니가 환하게 웃어 주었다. 백설공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아 언니는 중학교 3학년인데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되었고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해 보이던 연아네 집에도 슬픈 일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연아가 좀 안 돼 보였다.
'레이스 달린 원피스가 없으면 어때. 내 빨간색 쫄쫄이 바지도 이만하면 괜찮아. 피아노나 침대, 소파가 없으면 뭐 어때. 어차피 그런 것들 놓을 방도 없는데 뭐. 먹을 것 가지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언니 오빠 동생들 덕분에 밥 맛은 더 좋아. 좁은 방구석에서 흥부네 식구처럼 지내도 오손도손 재미가 있지. 옷을 언니한테 물려 입을 수밖에 없는 우리 형편이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부모님이 수박 참외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으니 쌀밥에 고등어찌개라도 먹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들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밥 짓는 구수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우리 동네가 코앞이다. 그렇게 달콤 쌉싸름한 6년의 초등학교시절도 끝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나의 옛 제자들에게 나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동요를 가르쳐 준 것이라고 했다. 1920년대부터 만들어진 동요를 비롯해서 1980년대에 만들어진 창작동요를 가르쳤다. 고향의 봄이나 반달, 과꽃, 찔레꽃, 오빠 생각, 엄마야 누나야, 과수원길, 나뭇잎배, 아기염소, 새싹들이다 등 아름다운 노래들이다. 내가 풍금을 치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 세상은 더없이 행복하고 밝게 빛났다.
'등대지기'나 '가을맞이'는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들이라 어쩔 수 없이 가르치고 불렀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그 후로 50년의 세월은 등대지기와 가을맞이에서 슬픔을 걷어내고 아름다움만 남겨 놓았다.
오늘은 문득 연아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