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짐의 미학
어릴 적 내 친구 덕자의 도시락 반찬은 소고기 장조림이었다. 덕자는 거의 매일 고기반찬을 싸왔다. 아이들은 유독 소고기 장조림에 눈독을 들였다. 생일날이나 명절 때 아니면 감히 함부로 먹을 수 없었던 귀한 고기, 더구나 돼지고기도 아니고 소고기 아니던가. 도시락 뚜껑을 열면 일단 옅게 퍼지는 간장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진한 갈색을 띤 야들야들하고 쫄깃하게 생긴 소고기 장조림. 고기에서 배어 나온 국물에 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게 하던 소고기 장조림. 단 한 사람, 덕자 빼고 나와 친구들은 눈을 반짝이며 침을 삼켜야 했다.
덕자의 책상 앞에 우리들을 더 오래 머무르게 했고 침을 더 많이 삼키게 했던 이유는 또 있다. 덕자는 고기를 먹을 때 그냥 젓가락으로 집어 먹지 않고 손가락으로 쫙쫙 찢어서 먹었다. 고기를 결대로 가늘게 찢어 아주 천천히 입에 넣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눈길은 고기의 움직임을 쫓아가다가 덕자의 입에서 멈추었다. 내가 보기에는 뭐 더 찢을 것도 없이 적당히 찢어져 있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가늘게 찢어야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내 도시락 반찬은 서너 가지 정도였다. 쪽파 파래 무침, 고춧가루 묻힌 반쪽 단무지, 하얀 콩자반, 짜디 짠 무장아찌가 전부였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그 서너 가지의 반찬을 요일별로 번갈아가며 싸 주셨다. 다른 애들이 보기에는 매일 다른 반찬을 싸 온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친구들의 반찬은 거의 매일 변함이 없었다. 물에 씻어볶은 김치, 그냥 배추김치,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각종 장아찌들이었다. 집안 형편이 더 안 좋았던 애들은 팬에 노르스름하게 달달 볶은 왕소금 반찬을 가져오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구의 왕소금 반찬이 특별히 맛이 있었다. 그 후에 언젠가 왕소금을 볶아 먹어 본 적이 있다. 왕소금은 반찬보다는 소주 안주로 더 잘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덕자는 늘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덕자의 소고기 장조림은 덕자를 늘 외롭게 했다. 덕자는 소고기를 씹으며 외로움도 같이 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서로의 반찬을 나눠 먹고 바꿔 먹으며 질보다 양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또한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찬의 다채로움에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은 아이들에게 아쉬움과 서글픔을 같이 맛보게 했다.
덕자네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처럼 그저 평범한 농부였다. 덕자의 반찬통에 소고기 장조림을 넣을 수 있게 한 풍족함은 덕자 할머니의 덕이었다. 덕자 할머니는 우리 고장에서 영험하기로 이름난 무당이었다. 집집마다 굿 예약이 있었고 쉴 새 없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굿을 해 준 덕에 쌀과 돈이 풍족했다. 엄마가 아파서 우리 집에서도 덕자 할머니가 굿을 했으니 우리 부모님도 덕자의 쇠고기 장조림에 어느 정도는 공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후로 소고기 장조림을 만들 때면 어김없이 덕자의 소고기 장조림이 떠올랐다. 처음 살림을 시작했을 때 소고기 장조림용 부위라는 우둔살로 장조림을 해보았다. 푹 익혀서 결대로 찢어보았지만 지저분하고 불규칙하게 찢어졌다. 다음엔 사태살을 사서 똑같이 해 보았지만 이것도 실패였다. 중간중간에 힘줄이 있어서 결대로 찢어지는가 싶다가도 뭉툭하게 끊겼다. 다음엔 홍두깨살을 사다 해보았지만 이것도 찢어진다기보다 그냥 뭉개졌다. 그 뒤로는 그냥 찢어지는 대로 끊어지는 대로 먹고살았다. 그렇게 덕자의 장조림은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지는가 싶었다.
어느 날 소고기 미역국을 끓일 때 고기를 칼로 썰지 말고 찢어서 넣으면 더 맛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장 양지살을 사다가 푹 삶아서 찢다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세상에 덕자의 손가락에서 찢어지던 고기는 바로 양지살이었어.'
고기가 결대로 길쭉하고 깔끔하게 찢어졌다. 덕자가 찢었던 것보다 더 가늘게 찢을 수도 있었다.
미역국이 전 보다 훨씬 맛있게 보였다. 그러나 미역국이 맛이 있건 없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옛날 덕자의 소고기 장조림처럼 고기를 가늘고 깔끔하게 찢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접시 위에 수북이 담긴 소고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지금은 덕자의 소고기 장조림보다 우리 엄마가 해 주던 하얀 콩자반이 더 간절하게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