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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by ocasam

이탈리아 영화 속에서 잘 생긴 중년 남자가 출근 준비를 마친다.

냉장고에서 어른 주먹 반 정도 크기의 토마토를 꺼낸다. 도마 위에 토마토를 얹은 다음 칼을 꺼낸다.

" 딱."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소리가 토마토를 반으로 갈라놓았다.


남자가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약간의 소금을 집는다. 두 조각의 토마토 위에 소금을 솔솔 뿌린다.

아니 휙 뿌린다는 표현이 더 낫겠다.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위 아랫입술을 다문 채 토마토를 씹는다. 무표정한 얼굴 같기도 하고 계속 뭔가를 생각 중이었던 것 같기도 한 표정이다. 토마토를 자르고 소금을 집거나 뿌리는 동작, 토마토를 씹는 동작 앞에

'우아하고 품위 있는'이란 형용사를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우아함이다.


눈이 내리던 겨울 저녁, 마트에 들렀을 때 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에 본 토마토 나온 영화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단단하고 빨간 최상품 토마토 몇 개가 카트에 담겼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오늘은 기필코 영화 속 그 장면을 재현해 보기로 작정했다.


토마토를 자르고 우아한 동작으로 소금을 뿌리고 드디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순간 토마토 즙이 입술 밖으로 터져 나와 턱을 지나 목덜미로 흘러내라는 것이 아닌가.

빛의 속도로 두루마리 휴지를 박박 찢어 닦는다. 아뿔싸 내 손보다 토마토 즙이 한 발 빨랐다. 옷 위에 한 줄기의 토마토 즙이 무늬처럼 새겨졌다.

" 이런 젠......"


토마토 즙이 묻은 불규칙하게 찢긴 휴지뭉치를 보며 생각한다.

‘영화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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