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by ocasam

성질 급한 개나리와 목련꽃이

잎보다 한 발 앞서 가지를 뚫고 나오더니

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봄


공설운동장 남문 창고 잔디 깎는 기계 밑에서

우리 일곱 형제는 한밤중에 태어났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고

모진 목숨을 보전한 우리 어머니의 덕이다.


민들레 핀 잔디밭에서 신바람이 났고

느티나무의 짙은 그늘 아래 서로 기댄 채 널브러져 낮잠도 잤다.

참 좋은 시절이 우리와 함께 영원할 것 같았다.


하얗게 무서리 내린 가을 아침

일어나 보니 공원이 조용했다.

엄마와 형제들이 사라졌다.


둘째인 나와 막내 동생만 남았다.

하루 종일 공원을 돌고 돌았다.

하루 가고 이틀 가도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지나갔다.

"아 글쎄, 청소 아줌마가 그러는데 지난밤에 고양이 여섯 마리가 죽었다네."

"누가 쥐약을 놓았다고 하더라고."

"아이고, 사람이 참 모질기도 하지."


한 줌 저녁 햇살이 비치는 회양목 울타리 옆에

동생과 나는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꿈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내 안에서 사그라지고 있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우리 둘의 운명


젊은 남녀가 지나가다가 카메라로 우리를 찍었다.

"어머나 쟤들좀 봐. 너무 귀엽지 않아?"

"하얀색 털이 바람에 날리고 있어. 동영상도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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