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용, 정윤아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
이 편협한 질문을 우리는 살면서 몇 번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이런 관용적 문구가 우리들의 사회에 또는 역사를 형성시켜왔다는 것도 대략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 해방이 아닌 사랑의 해방이라고 말한 이유는 왜 우리는 사랑을 항상 컨트롤하려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사랑도 하나의 형상이고 실체 하는 또 하나의 영혼인데 그건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으며 동등한 작용을 할 뿐이므로 그것을 굳이 차지하지 않아도 된다. 우린 사랑에 있어서 너무 상처받고 불안해했고 소진되어 왔다. 어떤 병리적 차원의 현상으로 그것이 진행될 때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는 것, 문제점이라고 명시해보고 담론을 쌓아가는 것은 생산적인 '나' 그리고 '사회'를 위해 필요한 지점이 아닐까.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그래서 하나의 가족이 탄생한다.라는 전제가 일반적인 가족관계와 사랑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폴리아모리한다에서의 사랑과 가족은 조금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가 진행해왔던, 명시했던 사랑에 격변을 가한다. 남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에서부터 다부모 가족까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욕심, 집착, 갈등에서 벗어나 정반합의 또 다른 사랑에 도달하고자 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에는 일부 진화심리학자들이 고대의 수렵채집인 무리가 일부일처제 부부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공동체는 사유재산이나 일부일처 관계, 아버지라는 개념도 없이 살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무리의 성인들은 힘을 합쳐 다수의 아이들을 키웠다는 예측을 하는데 부족사회라는 걸 감안했을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역사와 문화가 형성해온 사랑의 모습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변해온 것으로 납득이 간다.
폴리아모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풍부한 사랑을, 계속 커져가는 아메바의 증식처럼 그것을 오히려 인간의 자연 행상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각자 배우자와 진지한 관계의 애인이 있지만 또 다른 이성에 대한 호기심, 잘 보이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감정이다.
우리를 이끌어가는 사회적 체계와 패러다임 속에는 '안정'이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름에 따라 한 자녀 정책, 한국의 출산율 감소에 따른 다자녀가정 지원정책 등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자 하는 국가의 제재일 뿐인 것이다.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와 사랑도 조정이 가능한 사항이라면 일반적인 사고체계로 진행돼온 사랑에 잠시 멈추고 다양한 사랑의 형상과 변화에 눈여겨볼 만하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 그 행동의 양태가 누군가에게 정의되고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의 다름처럼 우리는 이미 어색하고 낯선 것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 점에서 '우리는 폴리아모리한다'는 우리에게 문화의 재해석이자 진보적 사고방식을 위한 초입의 책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은 자연스러워 보이고 가끔은 어려워 보이는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가속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이 중요성은 많은 욕심과 합리적 관계, 안정적 사회구조를 위해 부수적인 차원으로 떨어졌다. 책들의 사례와 객관적인 개념들을 통해 다시금 사람들이 사랑의 의미와 모습들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