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어요

프랑수아즈 사강 <한달 후, 일년 후>

by 빈빈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할 때

그것에 대해서 사색해보지는 않았지만

영원할 것이라고 반신반의했다




그것은 기대이자 한편으로는 연약한 믿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우리 모두에게 '첫'이란 것들은 굉장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남기도 한다. 그것은 다가오지만 또 멀어져 가는 것들이기도 했다.

영속하지 않는 사랑, 짧은 생, 지속하지 못하는 관계들.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사이엔 모종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인간은 어느 순간 외로워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두 번 봤다. 한 번은 그 슬퍼 보이는 영화가 너무나 궁금했으며 한 번은 쇼트 분석 수업을 들으면서 만나게 됐다. 나는 지독한 솔로여서 이 영화를 접했던 때 사실 어떤 감흥이 고조되지는 않았지만 조제가 하는 말, 영화 속 삽화들, 츠네오의 불안함, 방 안에 홀로 있는 담담한 조제. 이렇게 이미지의 슬픈 기억들만이 옹골지어있었다. 그러면서 조제가 좋아하는 저 책을 꼭 읽어봐야지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사람을 만나봐야지 라는 얄팍한 다짐이 일 년 후 성좌를 이루게 됐다.


소설 속의 서로를 구성하고 작용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외로움, 저마다의 사랑, 저마다가 감정으로 그들 자신을 자제하기도 때론 분출하기도 한다. 들뢰즈가 말한 '강렬도'처럼 각각의 존재들이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강렬도가 서로의 존재 개체를 가능하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강의 소설 속에는 절절한 감정만이 지나간 공기의 흔적처럼 남는다.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그 공기를 지탱해주는 투명한 액자로 존재한다. 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사로서 일정한 시간과 공간, 사건에 대해서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으며 매력적인 요소지만 사강의 소설에서 어떤 흐름을 감상하기보다는 인물들이 또는 사강이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상태만이 내 주위를 도사린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평온하게 하지 않고 찬란한 비극을 선사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빠져들었던 것은 이것이 프랑스식 감성인지 사강만의 감성인지 아니면 그녀의 감정적인 문체인지 나는 고민하거나 혼란스러울 필요는 없었다. 그저 그 순간에 나는 베르사유 광장에서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었고, 에펠탑의 거리에서 펑펑 울면 내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거실 다른 쪽 끄트머리에 있는 자크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가 그녀의 시선을 뒤쫓았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P186


덧없음. 권태. 삶의 한가운데 나도 모르게 생성되는 비극의 서사에서 누군들 사랑만이, 그 희망만이 남으리.

나는 감히 사랑에 대해서 내가 어떤 말을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지독한 외로움 그 타성에 젖어 나는 사랑의 연원에 두려워했고 사랑의 결말에 밀려나고 싶지 않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을 만날 수 있다면 그녀에게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거죠? 왜 우리는 고독해지냐는 거예요. 후에 우리는 어떤 존재로 만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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