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노래가 필요해

by 빈빈

일상의 소외감

그것은 너무나 방대해져서 소외감의 일상이 되었다


어제는 중견작가전을 보러 대전문학관에 갔다. 한창 문학에 관심이 많아져 너무나도 큰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간 전시는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전시 시작 날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올 줄이야, 사실 많다기보다는 기성작가, 대전의 중견작가, 등단한 작가들의 모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직 잘 모를뿐더러 실제로도 어떤 관계적 연유가 없는 사람들인지라.. 너도나도 플래시를 터뜨리는 자리에서 나는 초라해져 갔다. 나 혼자 젊은이라는 것 때문에 주눅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이런 자리의 느낌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귀빈객들의 소개와 행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나는 그저 조용히 귀에 이어폰을 장착했다. 규모가 큰 전시는 아니었지만 기존 미술전시만 보다가 문학 전시를 본 경험을 말하자면 역시나 문학은 가장 원초적인 예술로서 매력적이랄까. 마치 전시장이 하나의 책처럼, 전시의 제목인 프리즘처럼 공간 안에는 빛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일층의 중견작가전의 무게가 내게는 조금 무거웠나 보다. 몸이 뻐근하고 얼얼한 살갗이 아직 진정하지 못한 탓에 이층으로 나는 도피했다. 그곳에 털썩 주저 앉아서 나는 생각했지. '그래 잘 한 거야 잘 왔어'. 문학관에서는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간혹 그 공간의 소리를 들으려고 할 때가 있지만 어떤 시선처럼 무언의 소리들이 나에겐 너무나도 다른 세계 같기도 했으니.

좋은 노래를 찾는다는 것, 좋은 노래를 듣는다는 것. 물론 각각의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그건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관계적 지표상의 생활에서 만나는 '친구'는 있다가도 없는 것 없다가도 있는 것 같은 실재와 부재가 공존하는 반면 노래는 언제나 내 옆에 있는 것만 같다. 내가 필요할 때라는 전제조건이 일방향적이기도 하지만 노래도 나의 감정을 알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즐거울 때, 외로울 때, 행복할 때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성격이 비슷한, 분위기가 유사한 곡들끼리 친구를 맺는 것처럼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런 리스트는 마치 영혼의 공동체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서양에서는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원으로 둘러서 서로 편하게 대화하는, 일종의 치료방법이 있는데 왠지 그런 모습처럼 그들과 동그랗게 앉아 동글동글 해지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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