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변덕스러워서 어떤 책을 읽다가도 다른 책들을 번갈아 읽었으며, 한시에 잠을 자다가도 다음날이면 네시에 자는 날도 있었다. 이 변덕은 감정과 시간 사이에 항상 난파당하여 부유했다.
페이스북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가끔 나는 심오한 말들을 지껄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 책의 부분을 올리기도 하는데 사회적 활동을 했을 때 나의 게시물과 아무런 교우가 부재한 게시물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실 어떤 글을 올렸을 때 아는 지인 중에 100퍼센트 그 내용에 공감하거나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좋아요와 댓글은 어떤 의미에선 부재한 감정의 표현일 수도, 행동일 수도 있다. 그건 페이스북 친구도 마찬가지일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스무 살에 페이스북이라는 소셜 네트워크를 시작했을 때 내가 관심 있는 분야, 나의 학문과 관련 있는 사람들을 추가하기에 급급했다. 나는 그닥 인맥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모르겠다는 답밖엔 나오지 않았다.
나의 20대 초입은 대외활동과 연수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기에 내 페이스북 친구 목록은 제법 다채로웠다. 하지만 교류가 없는 유령친구들에게 나의 일상과 나의 사상, 정체성, 생각 등을 꼭 보여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특히 고등학교, 대학교 등 연고지라는 이유 하나로 페이스북 친구로는 남아있지만 서로 아무 관심이 없으며 어색해진 관계인 친구들인 경우에, 나에게는 꽤나 복잡한 사항이었다.
교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올해를 기점으로 너무 오래전에 나를 알고 있는 사람. 철없이 무턱대고 친구 추가를 했던 사람. 나는 차근차근 하나씩 삭제해갔다.
페이스북에 아는 형이 있다. 그 형과 친하지는 않지만 관심사가 비슷하고 딱 한번 만나봤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그 형은 지금 대학로에서 극단을 운영하며 연극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형의 열정이 좋지만 가끔 페이스북의 무분별한, 친하지 않으며 모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목록을 볼 때면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곤 했다.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일종의 권력 작용으로 인한 친분? 아니면 선망?
사람들은 욕심이 많고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허함을 느낀다. 실체 하지 않는 그저 부유하는 것들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 법한 무소유니 최소의 삶이니 그것은 아직 우리가 느끼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며 다가가기 힘든 또 다른 유토피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