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빈 Jul 03. 2018

불온한 당신에게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도 어느덧 몇년 전의 이야기이다. 사실 그는 몇일 전 오픈카톡방에서 진지층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호되게 혼을 났다. 아무리 서로 모르는 공간이고 그냥 넘어갈 법도 하지만 자신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상현씨의 말이 자뭇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반성의 톡을 남겼다.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그에게 말과 언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이지 않는 프로필 사진을 보며 나온 수많은 방들은 열에 아홉이 오픈카톡방이었다. 


사실 그에게 하루는 매우 예민한 시간들로 충만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또는 그 짧은 순간에 무엇인가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는 사실 모두가 진이 빠지는 로스로스게임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보이는 것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고 전경이 있다면 후경이 있었다. 마음 편히 살려면 안정을 택해야 하는데 정말 이세상에 안정적인 삶이 있을까. 

어느 책에서 그런 말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어떠한 때보다도 역동적입니다. 그 예로 우리는 겨우 10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때는 이라는 말을 듣죠.' 일 이년을 두고 폭풍을 맞이하고 있는 당신에게 불온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딘 사람이죠. 이런 말을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아닌 실제의 목소리를 통해서.


불온하고 예민한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기민하지는 않았다. 단적인 예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 살아남는다라고 마했던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그는 토끼를 두고 자신만의 루트를 가기로 말을 건넸다. 눈치가 빠른 것과 누군가의 심복이 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아니 틀린 것이라고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언변은 적어도 그에게 차려진 밥상마저 먹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했을 분이었다.


어느 날 밤 자기전, 평소에는 무딘 머리가 여러 생각들로 가동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영화 제목이었다. 불온한 사람들은 어쩌면 불안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불안한 사람들은 영혼을 해방시킬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질료만이 부유해서 자신을 먹이로 삼아 전염되고 복제되어 그것은 자연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은 욕망을 통해 또 다른 층위의 불안을 잠식할 것이었다. 그러면 그것은 예민한 사회로 점철되어 1인 미디어, 혼밥 등의 요상한 트렌드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몇 일 전 소중한 선생님과 함께 밥을 먹으며 그런 얘기를 했다. 협업만큼 멍청한 짓은 없어. 선생님은 공동체성이 강하고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 인상적인 분이셨는데, 그를 만난지 겨우 2년여만에 삶의 양태는 급속한 산업화처럼 탈바꿈되어 있었다.

불온하다, 아 불온하다. 불편하다, 아 불편하다. 내일은 또 어떤 역경의 순간이, 참을 수 없는 경미한 현상들이 비대해질까.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적 사해 · 작위적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