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빈의 조각이라는 초반 설정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감정, 사건, 생각 등을
담담히 적으며 이런 순간들을 시간의 조각으로 하나씩 남겨놓고 싶었다.
글들의 느낌과 정서가 달라졌고 나는 매거진의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해는 풍부한 뜻이 함축되어 있다.
四海란 '온 세상'. 큰 우주, 절대적인 환경 안에서 써갔던 나의 글들이며,
詞海란 문장의 풍부함을 바다의 깊이와 넓이에 비유한 것으로 글을 쓰는 나의 바람과 마음가짐이었다.
작위적 사회는 자신의 글들로 꾸며진 또 다른 사회를 지칭하면서도,
그렇게 보이는 작위적인 실상에 대한 돌아봄이었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쩌면 사진을 '찍음'으로서 시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일종의 아쉬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호소적인 느낌에
자신을 파고들고 돌아보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의 객관적인 성찰이나 타자의 이해를 바라지 않고 일단은 써보자라는 생각 아래.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인 '자유의지'를 잇는 사람의 하나로서 시작한 나홀로 프로젝트.
반 고흐의 작품이나 독일 표현주의 영화와 같이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늘어놓고 싶었다.
그것이 새로운 형식이 될 수는 없지만 가장 자신에게 묵직하게 다가가는 한 방편일 수는 있지 않을까.
사라지는 것들, 잃어가는 것들 속에서 '나'라는 미련을 붙잡고 싶은 마음속에서 말이다.
내 주변의 시간과 공간, 초반에 언급했던 그런 조각들이 나의 삶을 구성한다면
전체로서의 삶을 해체해보는 것도 의미 있으며 '글'을 통해 재미지게 놀았던 것으로 웃음을 머금는다.
일상화라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씩 되뇌고 회상하고 끄적여갔던 날들.
자작 사회라는 큰 틀 아래 조금씩 잃거나 되찾았던 가치의 순간들.
글들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