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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빈 Jul 08. 2018

RIP

한 달의 기점을 두고 내가 본 영화와 책에서 우연에 대한 소재, 말들이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모든 것을 시간에 맞춰 강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우연만큼 묘한 경험이 있을까 싶다마는. 그런 우연이야말로 언제 어디서 또 나를 놀래킬지 모를 향수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우울의 끝자락을 겪는 사람들에게 표정은 한겨울의 나무만큼 황량하고 타인의 침범은 금물이며 추측도 신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과 말이 없어지고 관심을 원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점유하는 생활을 보낸다. 그날도 가족들은 예민한 기분에 맞춰줄 수는 없었으며 그 또한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해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우울증 카톡방을 통해 깨달았다.

애써 침착하고자 그는 능숙하게 캐모마일 티에 뜨거운 물을 연신 퍼붓기 시작했다. 항염-신경완화-편안한 잠. 캐모마일은 꽃으로 탄생했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런 인식밖에 얻지 못했다. 꽃이 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인간도 인간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어느 대학교 출신, 어떤 이의 자식, 남자든 여자든 다양하게 인식될 수 있었다. 이것은 기본인 것이고 더 최악은 그냥 얘는 완벽주의자, 회사의 부품, 아이돌 누구 이런 것이 아닐까? 보통 스무 살 중반은 자기의 꿈을 펼칠 나이이거나 어떤 진보적 미래를 열망할 시기였을 수도 있지만 노멀한 생활과 마음의 평정, 무욕의 시기로 정체를 바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했다.


하루의 반 이상을 유튜브의 영상 속에서 사는 그에게 김다울이라는 모델의 옛 영상이 튀어나왔다.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좋아했던 모델이었고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KBS에서 기획한 영상은 한혜진 등과 함께 그 당시 뉴욕을, 외국에서 잘 나가는 한국 모델들을 특집으로 한 다큐 포맷의 영상이었다. 사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의 표정과 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데, 그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심각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전혀 가면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경미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할 때 일종의 괜찮은 척 증후군을 시전한다. 예를 들어 목소리의 톤을 제법 잘 컨트롤한다던가 웃음의 강도도 그러하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해지면 자신이 비참하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씩 털어놓고 표정과 말투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로 탄생하기도 하고, 꿈속에 나타나기도 하며, 알 수 없는 예민함의 신경질로 표출되기도 한다. 연속된 영상 속에 그녀가 그린 자학 시리즈는 그 당시에는 경탄이었겠지만 지금의 순간에는 안타까움과 애도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곤 그는 한없이 슬퍼졌다. 잊고 있었던 그녀가 이렇게 우연처럼, 아니면 필연으로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 이런 우연이라면 그와 그녀가 다음 생에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보여주는 단서라고 생각하고 싶어 졌다. 영상이 검은 흑막을 채우고 댓글에는 알 수 없는 영문의 사람들과 영어가 도사리고 있었는데 RIP가 빼곡해 있음을 기억한다. 평화는 무엇이고 쉰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rest라는 뜻의 다양한 뜻 속에 어느 관 속으로, 어느 관을 택할지는 본인의 몫일까 남겨진 사람들의 몫일까.


그렇게 일요일이라는 하루가 3시간 남짓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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