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먹어서 부모님과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었다. 나는 웬만하면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삶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했지만 우리가 겪은 사건과 현상들, 경험과 생각의 차이들을 극복하기에는 어느 정도 떨어질 필요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나약한 성장기 아이의 모습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마음을 강하게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체적, 정신적인 건강상으로 휴학을 했던 작년의 세월이 올해와 다를 바는 없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있던 질병의 흔적들이 드문드문 출현할 때가 있다. 또한 그런 질병들이 무기력과 망상, 불안함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마음이 아플 때 나는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결속, 가족이라는 연대의 끈을 잡지 못했다. 내가 아픈 것은 예민한 것이었고, 어이없게도 열심히 산 죄였고, 누군가에게 유려한 발표와 같은 토로일 뿐이었고, 그것은 모두에게 벅찬 여름 햇볕이었다.
사람의 세로토닌은 최상과 최악 어느 곳에도 정주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이 최악의 병에 걸려도 그것에 익숙해지고 심각치 않은 단계로 진입한다고 했었다. 나는 올해 뜻밖의 아픔들을 겪은 뒤 질병에 대한 포비아가 극심해졌다. 그래서 명상이나 호흡법이라는 낯선 무언가도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어쩌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보며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시간들을 영속하기 위함이 아닌지. 게이인 나로서는 결혼과 먼 얘기일 수 있지만 나는 나의 정체성을 자각할 시기에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한 사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인형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서로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채워주고 감정적인 유대를 키워나가고 결심을 하고.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은 많은 문제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들, 매력적인 선택지 등에 대해서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언제부턴가 가족들에게 많은 신경을 남발했고 가족도 나를 이해해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우리가 가족이다라는 것을 느끼곤 하니 그들을 너무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 세대를 통해 가족은 무엇인고 연대와 공동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느끼곤 한다. 가끔 만나지만 반가운 이모들, 할머니의 음식들, 할아버지의 안부전화. 그들과 있으면 그래도 이전의 내 모습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의 정신을 곤두세우곤 한다. 많이 변했지만 그때의 말투와 표정 행동들이 나를 살짝살짝 놀라게 하곤 한다.
언제든 혼자였지만 내년에는 변방의 시공간을 조금 더 타이트하게 좁혀가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