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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빈 Aug 02. 2018

불분명한 인식의 크로노트프, 새로운 감각으로서의 사물들

2018.8.1 청주 미술창작스튜디오 이서인 개인전 <미결정 레이블>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인의 시가 의미가 난해하고 어려운 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표와 기의를 탈피하고, 또 다른 의미로의 확장과 변이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서인 작가는 방치된 대상, 버려지거나 훼손된 대상에게서 ‘조형언어’의 가능성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이다. 작가의 작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절대성을 가지고 사물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대로 이름을 갖다 붙이거나 만들어놓고 버리는 등의 자신의 권력적 주도는 불필요한 행위의 소진이다. ‘미결정 레이블’이라는 주제에서도 느껴지지만 결정되는 않은, 분명치 않은 의미들은 반대로 가능성을 통해 무한히 ‘감각’ 되며, 그런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보편적 의미와 부여된 의미 사이의 간극을 되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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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성을 위주로 간주되는 사물들은 기능이 다하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 하지만 그런 한계는 전자에서 말 한대로 가능성이라는 초월의 계기를 갖는다. 이것은 사과의 이미지를 보고 사-과라는 단어를 무한 반복했던 유아기의 언어 인식을 파괴하는데 그 과정에서 단어만 남고 자의적인 이미지로서의 기의만이 남는 인식을 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언급했던 보편적 존재로서의 형상은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인식하는 고양이의 이미지만을 수용한다. 종류로는 페르시아 고양이, 샴 고양이, 색깔로는 하얀 고양이 검은 고양이, 생명으로는 늙은 고양이 죽은 고양이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인식 속에 자리 잡은 고양이는 그저 보편적인 갈색 고양이뿐인데 그러한 보편적 실재로서의 형상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미결정 레이블의 지향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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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의미와 맥락은 조형을 구축하기 위한 레퍼런스로 존재할 뿐 더 이상 의미적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 그것은 회화와 설치가 뒤섞인 작품으로부터 나오는데 ‘망가진 네온사인으로부터’는 실제의 등을 재현한 회화작품을 캔버스에 극 사실회화로 표현한 후 나무 기틀을 통해 평면회화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더불어 색과 함께 독자성의 기능을 가지던 네온들의 도상은 조형언어의 기초인 선과 면, 색만을 부여하며 추상적인, 하지만 감각 가능한 조형물로 재탄생한다. 네온사인이 가진 텍스트, 색깔, 유리나 플라스틱의 외부 재료 틀은 추상회화로 허물어지며 캔버스의 크기로, 선과 면의 불규칙적 부유로, 입체 설치의 기틀로 인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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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인 작가는 “회화는 그런 순간적인 것들을 붙잡으려는 의지이고, 설치는 그 순간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라며 미술 간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동시에 공존의 방식을 택한다. 회화가 순간적인 시간을 기록하는 평면적 감각이라면 설치는 흘러가는 시간 속 인식의 기틀을 잡기 위란 공간적 입체성이다. 그것은 시간의 변함에 따라 유실되거나 변색되는 언어와 사물의 기능과는 달리 감각적 순간으로부터 분출된다. 그럼으로써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의미가 구축되고 소멸되고 변이 되는 일반적 과정 사이에서 회화와 설치, 입체 오브제의 조화는 새로운 기표-기의의 과정을 통해 조화를 모색하며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한다. 이것은 문학이라는 장소 안에서 새로운 크로노토프(시-공간)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열망과도 같다. 문학 또는 미술이라는 분야이자 장소를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 가진 신체적·사회적 제약조건, 그런 한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경로는 미결정 레이블의 할당되는 않는 번지와는 확연히 다른 의미체계를 가진다. 적어도 그런 상호작용은 정해진 시공간에서 즉 크로노토프 관점에서 기술되고 설명될 수 있는,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자의적 속성의 범람하는 의미들뿐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크로노토프의 기술로서 조형언어는 모든 경로를 이탈하고 새로운 ‘시공간 프리즘’으로서 의미의 존재양태, 시공간적 한계 범위를 확장시키며 또 다른 조형적 가치로 다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브제 드로잉_미결정 레이블’은 넘쳐나는 상품들, 손쉽게 퇴색되는 의미들에 대한 비판이며 미술이 가진 사회적 역할이기도 하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공공미술이 지역사회로부터 시작되듯이, 청주 주변의 철물점과 폐 상가에서 얻은 물건들은 소유 가능하고 대량으로 생산되었던 하부적 사물에서 의미 구성에 대한 언어 기호, 새로운 조형언어에 대한 자연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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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조형언어로 재탄생한 것들은 감각을 통해 유기적인 연속성을 찾기 마련이다.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라는 노랫말에도 알 수 있듯 ‘Organic matter’은 유기적 속성을 지닌 의미의 단위를 분절한 후 조형성으로 치환한다. 그럼으로써 그 과정엔 유기적 보편이 추상적 보편의 속성 개념인 검은, 푸른, 사각의 등의 형태로 감각된다. 헤겔이 언급했던 구체적 보편이자 유기적 보편을 결정하는 기준들은 다양성, 상호관계, 통일성 자기 유지성인데 명확하지 않은 면의 형태, 다르게 표현된 선과 점의 기술들은 불규칙한 관계 속에서 통일과 반복으로 점철된다. 이것은 언어를 속성화하지 않고 직관-표상-사유를 통해 언어를 생성하는 과정과 다시 처음 규정으로 복귀하는 조형언어의 표현 방식인 셈이다. 따라서 인식이 아닌 감각을 통해 의미는 지각되고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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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적 구축이 정확한 의미 관계를 발화하는 것보다 명명되지 않은 새로운 감각으로 지각될 때 그것은 인식이라는 틀을 넘어 새로움으로 도약한다. 미술이 재현의 도구를 넘어 변형과 탐색으로서 감각화를 시도한 미결정 레이블은 사물의 양태 가능성 넘어 미술, 인간의 지속가능성 모두 취하며 새로운 미술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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