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스페이스 x국제 실험영화제 데보라 스트라트맨 <핵트 서킷> 기록
흔히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시각과 청각을 동반한 복합적인 감각을 통해 영화를 인지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외화면이 존재하거나, 그것을 사운드로 일부로서 청각의 시각화를 모색하거나, 사운드를 적절히 늘리거나 차단하여 시각적인 강조를 높이기도 한다. 이번 인디스페이스 기획상영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전시에 있어서 장르의 다층적인 모색의 일환으로 (점점 늘어가는 것을 넘어) 영상 작품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미디어시티 비엔날레가 하나의 전시로 일축될 만큼 영상매체는 예술의 한 장르를 넘어 점점 스테이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일례로 며칠 전 방문했던 아트선재센터에서의 남화연 개인전 <마음으로부터> 또한 4 채널의 영상 편지로 시작하여 전시 동선에 따라 퍼포먼스 기록 영상, 퍼포먼스 재현 영상, 다큐멘터리 영상 등 사이 간격을 유지하며 단채널의 여러 화면들로 종류 됨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제외하고라서도 실험영상을 읽어내기 위한 어려움들, 추상적인 영상의 반복 재생들을 염두했을 때 최근 '영상'이라는 장르(영상은 매체라고 해야 할까 장르라고 해야 할까)는 꽤 흥미롭다.
-
인디스페이스가 국제실험영화제와의 콜라보를 통해 선보인 첫 작품은 데보라 스트라트맨의 <핵트 서킷>이다. 이 15분의 단편 영상은 야외에 있는 외부의 카메라가 내부의 폴리 스테이지(폴리란 촬영이 끝난 필름의 효과음 녹음, 인공적으로 효과음을 만들어 내는 일)를 휘젓고 다니는 롱테이크의 영상이다. 또한 이 영상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부분은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 1974> 중 도청 전문가 해리가 자신의 방에 숨겨진 도청장치를 찾기 위해 방을 휘젓고 박살 내는 시퀀스이다. 이러한 스핀오프 작품은 영화에 대한 이해를 딱히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핵트 서킷은 영화에서의 시각적인 의미 이면의 청각적 요소, 사운드가 만들어지는 과정, 폴리의 예술성, 보이지 않는 소리 등에 대한 담론을 회기 시킨다. 이 영상에서 <컨버세이션>은 하나의 또 다른 영상에 불과하며 카메라가 비추는 인물은 영화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스튜디오 내 폴리 아티스트이다. 실제로 감독인 데보라는 그렉 바바넬이라는 사운드 액터를 만난 후에 스크린 액션과 사운드를 일치시키는 모습을 보며 큰 영감을 얻었는데 <핵트 서킷>내에 등장하는 폴리아티스트가 바로 그렉이다. 그렉 바바넬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소리 배우인데 레버넌트, 워킹데드, 나우 유 시 미 등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을 넘나드는 사운드 아티스트이다. 여기서 바바넬을 찾아보며 든 의문은 영화 속에 배우로 등장하여 시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만이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이 15분의 단편영화로 인해 영접했던 <컨버세이션>은 도청 전문가라는 몰래 듣는 자(몰래 보는 관음증이라는 절대적 영화이론에서 벗어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청각의 예민함을 영화의 연출로서 긴장감을 이어나간다. 이 미스테리한 영화는 피아노 건반의 음산한 사운드트랙, 찢어지는 디지털 사운드의 효과음들을 통해 서스펜스를 형성해나가며 사운드에 있어 기념비적인 영화로 자신을 공공히 해나간다(마치 영상이 전시장을 차지해나가는 것처럼). 따라서 극 중 해리는 특별한 행동이나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듣는 것'에 집중하며 강박적으로 듣는 모습에 치중한 '연기'를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렉 바바넬 또한 자연스럽게 작업하는 모습이지만 평소에 시각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영화 이면의 배우에 대한 적절한 제스처들을 작품의 카메라를 통해 보여준다.
-
<핵트 서킷>에서 폴리는 절대 '장면'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비록 카메라라는 절대자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핵트 서킷>이 강조하는 점은 소리를 연출하는 모습에 국한한다는 점이다. 사운드 스튜디오 내에서 재생되는 영화에서의 시각 장면들을 카메라 내에 위치시키며 영화의 인위성을 확장시키고(또는 하나의 채널에 불과하다는 점을 은유하며) 영상을 이끌어나가는 카메라는 폴리 아티스트를 담거나 스튜디오 내의 소리를 발화시키기 위한 캐비닛의 다양한 사물들(의자, 합판, 공구, 전화기 등)을 조명한다. 그것은 마치 영화에서 인물들의 동선이나 감정선을 따라는 카메라의 모습과도 같다. 결국 카메라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배우의 연기보다는 영화 내의 '소리'라는, 드러나지만 보이지는 않는 익명성의 또 다른 행위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후 편집 과정에서 폴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사운드가 영화에서 중요한 연출기법 중 하나로 자리잡기도, 내러티브가 영화 전반에 걸쳐 감정을 유지시킨다면 소리는 특정 쇼트와 씬들의 파편화된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점(대사를 강조하거나 장면에서의 여러 소리를 돌출시키고 싶을 때) 등을 고려했을 때 꽤 기민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영상에서의 대화, 배경에서의 미세음, 음악 등의 사운드 믹스가 일어날 때 한 화면에 혼합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조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
<핵트 서킷>을 배회하는 카메라는 정확히 동심원의 모양으로 스튜디오 바깥에서 스튜디오 문을 통해 들어와 후문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첫 장면의 동선을 따라 정적으로 이어진다. Circuit이라는 순환(로), 회로를 의미하는 바는 직접적으로 카메라의 움직임을 정립하는 단어인데 모호한 것은 Hacked이다. 핵트 서킷을 구글링 해보았을 때 자동번역이 잡아내는 것은 '해킹된 회로'라는 단어로 '핵트'가 의미하는 바를 여러 짤막한 글들의 정황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해킹, 해커의 의미가 어느 정도 동일시된다. 다음은 비엔나 영화제 홈페이지에 기록된 핵트 서킷의 일부를 번역한 부분이다.
"HEARTED CONCERT는 폴리 프로세스를 단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러 층의 제작과 부과가 드러난다. 이 원형 카메라 경로는 우리를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의 폴리 무대 안과 밖으로 이동시킨다. 작업 중에 소리 예술가를 묘사하는 동안,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영화 제작 지원 메커니즘은, 연장이나 인용에 의해, 정부의 개인 사생활 침해에 노출된다. 이 장면은 진 해크만의 등장인물 해리 콜이 은밀하게 심어진 것으로 의심되는 '버그'를 찾아 그의 방을 찢어 놓는 '대화'의 마지막 순서다."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스튜디오의 풍경을 취재하는 카메라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충만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위 번역에서 드러나듯 핵트 서킷은 거대 사회, 정부라는 큰 프레 임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이 쉽게 노출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영상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영화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인데 이 영화는 미국 국회의장의 살해 현장을 담은 비디오를 얼떨결에 전달받은 개인의 삶이 얼마나 억압되고 통제되며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영화 속에서도 해리 콜은 에드워드 브릴로 이름만 달리 한 채 또다시 도청 전문가로 등장한다. 스핀오프 영화의 일부로 <컨버세이션>이 재등장하는 것 또한 다분히 의도적인데, 자칭 도청 전문가라는 인물이 자기가 들을 수 있는 것 이상을 듣고 관심 가질 때 벌어지는 상황들 예컨대 살해 협박과 미행 등은 거대 조직의 감시 하에 무능력해지는 인간을 보여주기도 한다.(영화에서 해리는 유명한 도청 전문가로 모든 이들의 선망을 받지만 결국 역으로 도청당하며 개인의 나약함으로 자신을 종결짓는다). 여기서 폴리 스튜디오는 지극히 통제된 사무실 안에서의 소리-대화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스튜디오 내의 사물들은 소리를 내기 위한 부자재에서 얼마나 많은 방법, 다양한 회로를 통해 도청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벙커로 전이된다.
-
데보라는 눈이 아닌 귀가 감정의 주된 요소로서 폴리 아티스트를 필두로 영화 이면의 행동들을 들춰낸다. 또한 영화에서의 사운드가 전혀 자연스러움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카메라가 스튜디오 내에 위치하지 않았을 때 바깥의 풍경 속에서 충돌하는 사운드들은 <컨버세이션>이라는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에 걸맞은 장면을 상기하기보다는 인위적인 사운드로 재인식해버린다. 소리로 인한 시각적인 불안함과 인식 불가능함은 오히려 보고 있는 시야가 초현실이나 망상, 꿈의 저편이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다음은 더 크레딧의 내용 중 데보라 스트라트맨이 언급한 사운드에 대한 말을 번역한 부분이다.
스트랫맨은 소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우리의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알려준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에 (그녀가 지적하는 대로 '한 방향'에 있는) 시야보다는 소리, 항상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위의 경관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따라서 우리의 시야가 우리의 인식과 같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귀에 무겁게 의존한다. 이런 이유로, 소리는 우리의 눈보다 우리를 훨씬 더 속일 수 있다. "사운드는 군사산업단지의 이 거대한 부분이었고, 소닉 감시, 소닉 위장을 이용한 다른 군사 분단의 오랜 역사가 있었는데, 우리가 그것에 너무 쉽게 속기 때문에."
스트래트먼은 음향 디자이너들이 관객들을 어떤 장소에 가두기 위해 영화에서 소리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 제작자가 관객들을 음성으로 어떤 장소에 배치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워, 세상 사람이니까, 그 앞에 있지 않으니까. 저쪽에 있고 여러분이 보고 있는 곳은 시각적이지 않다. 소리를 내며 갑자기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단한 무언의 신뢰가 있는데,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감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실제로 느끼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렇게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을 씻기고 영향을 끼친다." 베이비시터가 어둠침침한 지하실을 어리석게 내려가는 것이 공포영화에서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든, 프레데터가 가까이 있을 때 내는 이상한 소리든(하지만 보이지 않는 소리) 스트랫먼은 폴리 아티스트가 영화 보는 사람보다 우리의 비판적인 능력을 덜 사용하기 때문에 영화 보는 사람에게 믿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
영화 이미지라는 환상, 오늘날 CG의 발달이 영화를 더 현실 같도록 인지하게 했지만 여기서 인식 불가능한 사운드를(싱크를 맞추지 않는 것) 얹힌 영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데보라는 단순히 시각적인 유인과 체계를 벗어나 소리의 잠재력, 사운드가 어떻게 우리를 통제하는지에 대한 힘의 역학에 관심을 가지며 우리를 유인한다. <핵트 서킷>에서의 카메라는 유령처럼 선회할 뿐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은 모두 '소리'일뿐이다. 그런 카메라의 움직임은 우리의 시선을 조종하는 형태로 폴리 스튜디오의 내 외부를 들춰낸다. 영상의 시작이 스튜디오 밖에서 시작하며 <컨버세이션>의 사운드 트랙과 효과음으로 어두운 거리에서 서서히 움직일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는 의문과 함께 이미지와 사운드의 불일치 안에서 방황한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시작은 거리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소음(차 소리, 사람 발걸음 소리 등)이 아니며 어수선한 공간 안에서 청자로 하여금 서스펜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서스펜스는 불안함보다는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청각적 긴장감은 일명 브금이라 불리는 BGM문화를 살펴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때 커뮤니티상에서는 잔인하거나 무서운 영화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캡처된 영화의 장면을 그저 나열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영화와는 별개로 제작된 소름 돋는 사운드나 타 공포영화에서의 사운드 트랙을 혼용시키며 콘텐츠의 긴장감을 드높였던 모습은 사운드에서의 서스펜스 논의를 충분히 보여준다. 더불어 특정 시사 프로그램에서의 반복적으로 사용되는(예를 들어 그것이 알고 싶다) 의미심장하고 베일에 둘러싸인듯한 사운드는 미제 사건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을 드높인다.
-
다시 핵트 서킷의 일부인 <컨버세이션>의 시퀀스를 돌아보자면 이 영화는 청각의 집착, 듣는 것으로 인한 편집증과 강박에 시달리는 남자의 비참함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영화의 시작이 광장에서 여러 사람을 비추며 관음 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엔딩에서는 도청장치를 찾기 위해 자신의 집을 전부 찣고 박살 내는 주인공의 내부 상황을 보여주며 집 내부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은 자취를 감취고 그러한 차단을 통해 이미지와 사운드에서 모종의 힘은 전치된다(실제 데보라는 인터뷰에서 박살 나고 어수선한 집 내부가 많은 도구가 쌓여있는 폴리 스튜디오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발언했다). 그렇기에 데보라는 영화에서의 사운드를 더욱 부각하기 위해, 스튜디오에서의 조작된 소리들을 들춰내며 핵트 서킷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 <핵트 서킷>은 꽤나 단순한 촬영 기법과 그저 스튜디오 내부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비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영화라는 또 다른 세계이자 시간성에는 이미지만 범람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영화가 더 사실성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인식체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더 인위적이고 조작된 사운드 행위가 필요하다는 아이러니함을 폭로하는 작업이기도 하며 그런 행위는 폴리 아티스트라는 익명성의 행위로 발현된다는 점을 카메라의 주체로 내세운다.
-
컨버세이션과 핵트 서킷의 대조적인 이중 화면 구성은 컨버세이션에서 도청 전문가 해리 콜-거대 조직의 협박자/ 핵트 서킷에서의 폴리 아티스트-음향 엔지니어 조력자라는 구조적인 차이를 내세우며 영화 내부의 정황과 영화 외부의 스튜디오 환경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이러한 간극은 영화 사운드에서 이미지와 소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처럼 상호 의미를 구조화하는 체계임에 분명하지만 그러한 의미를 해체시키는 순간 이미지와 사운드는 자의성을 잃는다. 이러한 자의성은 이제 '반드시'를 넘어 '가능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미지에 사운드가 수렴되는 것이 아닌 사운드와 이미지가 개별적인 존재로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가진 채 둘 사이의 모종의 권력은 사라지게 된다. 시각적인 이미지의 중요성이나 영화는 이미지드러나지 않는 사운드의 사각지대에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개입하는 일은 컨버세이션에서 해리 콜이 어떻게든 듣고자 하는 일과 공명을 이룬다. 도청 전문가와 폴리 아티스트는 서로 다른 상황이지만 결국 같은 행위로 이어진다.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인 음모와 같은 소리들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사운드를 맞춰나간다. 이러한 소리들은 사실성에 기여함으로써 영상을 이롭게 하는지 영화라는 제8의 예술에 독자성을 기여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이렇게 <핵트 서킷>은 장편의 영화를 단편으로 해체시킴으로써 사운드 넘어의 '가능성'과 이면의 요소들을 찾아보는 실험적인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참고 자료>
1. http://www.galeriestadtpark.at/htms/archiv_hacked_text_e.htm
3. https://www.viennale.at/en/films/hacked-circuit
4. Meant to Be Heard, Not Seen: The Invisible Performances Behind Fole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