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동안 글을 손에서 뗀 것인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어색하다. 그런데 이 느낌조차도 나태함에 대한 반성이나 경종 따위는 울리지 않는다. 지금 무엇인가 학문이나 공부, 깨달음에 대한 나의 감흥이나 카타르시스가 무뎌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 수업은 강사님이 뭐라고 하시든(물론 그분은 체계적인 분은 아니다. 그분이 알고 계신 걸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도 한 사람의 어떤 층위 즉, 시간과 공간 속에서 깨달은, 알게 된 것들을 나 또한 얻고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괜찮은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영화 몇 편을 건네주며 글을 쓰라고 하셨다. 그중 하나는 ‘홍상수’. 내가 저번 학기 맡은 과제의 감독은 홍상수였다.
이 분은 말이 많은 감독님이 되었다. 자신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여자와 사랑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다시 내 글로 돌아와서, 나는 이 감독님의 작품을 아직 좋아한다 나쁘다고 말할 것이 못된다. 근데 신기한 것은 다른 영화나 감독의 작품(내가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을 볼 때랑은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건 이 감독님만의 스타일이기도 한데, 일상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외로운 사람들, 사랑에 대한 사유가 필요한 느낌 등 공통되지만 생각해볼 것들이 많다고 느껴진다.
오늘 영화 속에서 나는 스무 살에 대한, 했던 착각에 대해서 반성한다. 나는 삶을 너무 반짝이는, 좋은 것으로만 치부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좋아했고 망상에 빠졌었다. 무엇인가 지금은 달라짐을 체감한다.
인연이 있겠지. 인연은 있어. 이것은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말이다. 왜 일상 속에서 우연을 포착하려고 하는가. 왜 자꾸 기적적인, 극적인 것을 원하는가.
무엇인가 갑자기라는 것은 없다. 원인과 결과는 존재하고 그 한 층 한 층 속에 내가 스며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래서 값진 시간들이다. 사실 내가 무슨 글을 쓴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나 더 봐야겠다. 뭔가 끌린다 그의 영화가.